다만 박 대통령이 임기 내 공약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점은 향후 또 다른 사과의 빌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재정 여건’을 단서로 달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고 증세 가능성도 열어두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박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 말미에 한 기초연금 축소 입장 표명은 ▲기초연금이 공약보다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 설명 ▲공약 축소에 대한 사과 ▲임기 내 공약 실천 노력 약속 ▲세수 확충을 위한 정치권의 협조 촉구 등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18매다.
핵심참모들도 깜짝 놀란 사과 수위
박 대통령은 원고의 가장 많은 부분을 공약이 축소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가장 먼저 이날 의결한 내년도 예산안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세수 결손 현상에 따른 예산안 편성의 어려움을 부각시켰다. 또 자신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주장해온 기초연금 제도가 재정 여건 악화로 인해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전달했다. 아울러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기초연금이 최선의 대안이었다는 점을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그동안 저를 믿고 신뢰해주신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겨서 죄송한 마음”이라며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사과 입장을 표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날 국무회의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유감스럽다’ 또는 ‘안타깝다’는 표현이 나올 것으로 점쳤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입에서 ‘죄송’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적지않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국무회의 직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진정성과 진실을 담아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야말로 대통령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말씀 그대로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
야당 주장 반박..또 다른 불씨 남겨
박 대통령은 공약 축소에 대해 사과를 하고 이해를 구하면서도, 야당의 비판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특히 ‘공약 포기’ 주장에 대해선 “공약의 포기는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아울러 정치권을 향해 세수 확대를 위한 협조를 거듭 촉구한 것은 사실상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는 민주당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증세를 비롯한 재원 조달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공약 실천’을 재천명해 향후 경제 상황에 따라선 또 다시 사과를 해야 할 빌미를 남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사과는 이번이 세번째다. 지난 4월12일 민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장ㆍ차관급 낙마사태에 대해 “인사와 관련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방미 기간 윤창중 당시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발생하자 5월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 드린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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