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그는 재계의 거목이었고, 한국 경제의 역사였다.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글로벌 브랜드를 키운 애국자이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섬병원에서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졌던 이 회장은 6년 5개월가량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새벽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부인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가족들이 고인의 임종을 지켰다.
고인은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그가 33년 전 회장 취임사를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의 약속이 실현되리라고 믿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는 27년간 삼성을 경영하면서 사업보국(事業補國)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모두가 반대하던 반도체 사업에 투자한 결단력과 모바일 시대의 도래를 내다본 통찰력, 그리고 완벽한 품질을 향한 집념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은 물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고인은 특히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술중심과 인재중심 경영을 펼치며 도전과 활력이 넘치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 기업 체질을 튼튼하게 만들었다. 흑백 TV를 만들던 개발도상국의 작은 기업은 이제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선도하는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삼성전자는 현재 메모리 반도체, TV, 휴대전화 등 20여개 품목에서 글로벌 1등을 달리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현재 386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고,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커졌다. 올해 삼성전자의 글로벌 브랜드 가치는 623억달러로 세계 5위에 올라 있다.
고인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주도한 인물이기도 했다. 회장 취임 이듬해인 1988년 중소기업과의 ‘공존공생’을 선언하고, 사회공헌활동을 경영의 한 축으로 삼은 것은 시대를 한참 앞서간 결정이었다. 확고한 인사 철학을 바탕으로 1995년부터 채용 과정에서 학력 차별을 없애고 여성 인재 발굴에 힘쓴 것도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건희 회장의 별세 소식에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빈소가 마련된 서울삼성병원에 조화와 함께 위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거목을 잃은 재계는 이 회장의 업적을 기리며 고인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변신과 성공을 주도하며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추모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 회장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재계 최고의 리더였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위기마다 도전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한국 경제의 지향점을 제시해줬던 고인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의 경제 위기 극복과 경제 활력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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