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길과장’ 자리 비운 세종청사..행정 비효율 ‘위기’

  • 등록 2016-09-02 오전 6:00:30

    수정 2016-09-02 오전 6:00:30

[세종=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충북 청주시 오송역 3층에 있는 커피숍에는 공무원 10여명이 스마트폰을 보며 10시23분 서울행 KTX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른바 ‘길과장’들이다. 공무원들이 세종시와 서울을 오가는 길 어딘가에 있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정부세종청사 1단계 이전이 완료된 것은 2012년 12월이다. 길과장들로 인한 행정 비효율 문제는 이 때부터 불거졌다. 당시에는 세종청사가 안착되면 해결될 문제로 봤다. 그러나 4단계 이전이 진행 중인 현재 길과장들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코레일에 따르면 평일 업무시간 기준으로 한 달에 5000여명의 공무원들이 오송역에서 서울행 KTX에 몸을 싣는다. 세종청사 입주 초기에 비해 3배 넘게 늘어난 규모다. 오송역 이용객 수가 올해 상반기 전국 9위를 기록한 데는 이들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경제부처의 A과장은 “오송역과 서울역은 KTX로 50분에 불과하지만,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청사에서 국회까지 2시간, 왕복 4시간은 잡아야 한다”며 “서울 일정이 오후에 잡히면 하루를 다 길에서 보낸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국회다. 국회와 밀접한 정부 업무 특성상 국회의사당이 있는 서울을 오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공무원들은 의원 보좌진들에게 현안을 설명하기 위해 국회에 가는 일이 더 잦아졌다. 기획재정부 예산실 공무원들의 경우 추가경정예산안과 예산안 통과를 앞둔 시기에는 국회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한다.

국회와 세종청사의 행정 비효율을 막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설치한 화상회의시스템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국회 회의실도 있지만 문이 열린 적이 드물다.

길과장들이 자리를 비운 세종청사는 제 구실을 하기 어렵다. B사무관은 “국장과 과장이 자리에 없는 시간이 많아 하루면 될 일을 이삼일씩 하게 되는 경우도 잦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와 같은 도제식 교육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고 했다.

출장이 많아짐에 따라 공직기강 해이 문제도 발생한다. 지난해에는 서울 출장 보고를 하고서 출근하지 않은 한 간부가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출장이 워낙 많다보니 자리를 비우면 ‘길 위에 있겠지’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탓이다.

◇ 행정수도 이전 부지 이미 확보

세종시와 서울로 이원화된 행정기관 때문에 생기는 비효율은 행정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에 따르면 국회와 청와대 이전에 필요한 부지는 충분한 상태다. 행복청 관계자는 “특정 지역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개헌이 이뤄지고 행정수도가 이전한다면 신규 건물을 지을 땅은 충분히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세종시에는 정부청사 인근 원수산 기슭에는 참여정부에서 행정수도를 추진하면서 계획해둔 유보지가 80만㎡ 가량 확보돼 있다. 정부 청사 주변에는 130만㎡ 규모의 중앙공원 터도 있다.

그러나 국회와 청와대를 모두 이전하기 위해선 개헌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국회분원과 청와대 제2집무실을 설치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란 주장도 있다. 이는 세종시를 지역구로 둔 이해찬 의원의 총선 공약이기도 하다. 지난달 8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박영선·김종민·김현미·김태년 의원이 이춘희 세종시장과 함께 국회 분원 설치 후보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일각에선 행정수도 이전이 ‘길과장’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제부처의 C과장은 “세종시 이전 이후 업무 비효율이 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과천청사 시절에도 여의도까지 오가는 길은 멀었다”며 “시도 때도 없이 국회에 불려가는 문화 자체가 업무 비효율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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