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탄 그놈, CCTV서 사라졌다…007 방불 `라임 몸통` 도피 행각

경찰, 23일 서울 성북구서 김봉현·이종필 체포
수사기관 추적 피하려 수시로 택시 갈아 타
차에서 내려 걷고 방향도 일정치 않게 이동
경찰, CCTV 통해 행적 추적해 김 회장 검거
은신처에서 이 전 부사장 및 자금 조달책 검거
  • 등록 2020-04-25 오전 8:35:00

    수정 2020-04-25 오전 10:38:51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경찰은 CCTV로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워낙에 자주 택시를 갈아타는 통에 그의 행적을 놓치기 일쑤. 하지만 끈질긴 수사 끝에 그의 꼬리를 잡았다, 그는 몸부림치며 완강히 저항했지만 경찰에 설득에 넘어갔고, 자신의 동료가 있는 은신처까지 말하고 말았다. 은신처에는 거액의 범죄수익과 미처 도망가지 못한 일당이 있었고, 경찰을 이들을 일망타진했다.”

라임자산운용의 전주(錢主)로 지목된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24일 오전 경찰 조사를 위해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청사로 호송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지난 23일 서울 한 주택가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이다. 펀드 환매 중단 등으로 투자자들에게 1조6000억원대 피해를 준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의 핵심 피의자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경찰에 잡힌 장면이다.

택시 수차례 갈아타고, 방향 알 수 없게 이동…치밀한 김 회장의 도피

이들은 약 5개월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며 해외로 몸을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지만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 지난 23일 경찰은 서울 성북구 한 주택가에서 외출 후 귀가하던 김 전 회장을 체포했고, 이어 라임 사태의 또 다른 핵심 인물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을 검거했다.

이들 피의자의 행적은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가 잡혔다. 이들을 체포한 것 역시 그동안 라임사태를 수사해오던 서울 남부지검이 아닌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라임 사태와 별대로 경기도 내 버스회사인 수원여객의 회삿돈 161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김 회장을 쫓던 경기남부청 지능범죄수사대(지수대)가 라임 사태의 ‘몸통’을 모두 검거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지수대는 최근 김 회장이 제 3의 인물인 A씨와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 앞서 경찰에 검거된 김 회장 최측근의 가족과 A씨가 만나고 있는 것을 보고 김 회장과도 접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예상은 적중했고, 폐쇄회로(CC)TV를 통해 그의 행적을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수사기관의 추적을 의식한 것 같은 김 회장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는 A씨를 만나러 가면서도 택시를 서너 번 갈아탔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택시를 갈아타는 것도 바로 그 자리에서 갈아타는 것도 아닌 도보로 따로 이동한 후 택시를 탔다. 이동 방향 또한 동서남북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승명 경기남부청 지수대장은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택시를 굉장히 여러 번 갈아탔고, 방향도 일정치 않아 행적을 추적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최근 이렇게 용의주도한 사람은 보기 힘들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경찰은 김 회장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고급 빌라 특정하고 잠복에 들어갔다. 그리고 23일 오후 9시께 김 회장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잠복 경찰관의 눈에 들어왔다. 또 다시 어디론가 이동하려던 그는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체포하려는 경찰에게 가짜 신분증까지 제시했고, 몸부림을 쳤지만 그는 경찰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24일 오전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 회장 은신처서 나온 뜻밖의 성과…라임 사태 ‘몸통’ 잡았다

경찰이 판단하기에 여기까지는 ‘50점’의 성과였다. 범죄수익과 다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선 그의 은신처를 확실하게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김 회장에 대한 설득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성과까지 거두게 됐다. 바로 이 전 부사장의 존재였다.

지수대는 수원여객 사건 해결을 위해 김 회장을 쫓고 있었는데 라임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된 이 전 부사장이 같이 도피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김 회장과 함께 현장에 들이닥친 경찰은 이 전 부사장을 바로 체포했다. 그는 체포에 큰 저항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저항은 또 다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김 회장과 이 전 부사장 외 제3의 인물이 있었던 것. 라임의 자금 조달책이었던 전 신한금융투자 심모 팀장이었다. 그는 창문을 통해 다른 주택의 지붕으로 달아났지만 멀리 달아나지 못했고, 인근에 숨어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해 체포했다.

이들의 은신처에서는 수억원의 현금이 발견됐다. 이승명 지수대장은 “범죄수익 중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수원여객 횡령 범죄 자금인지 다른 범죄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영화 같은 라임사태 핵심 인물들의 체포 작전이 마무리됐다. 뜻밖의 성과를 낸 경기남부청 지수대는 우선 수원여객 횡령 사건에 대해 김 전 회장을 수사한 뒤 김 전 회장의 신병을 검찰에 넘길 방침이다. 그러나 이와 무관한 이 전 부사장과 심 전 팀장은 서울남부지검으로 바로 인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라임사태에 청와대 윗선의 개입 여부와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부실 감독이 없었는지에 대해 수사력이 집중될 전망이다. 또한 라임과 펀드 판매사가 펀드의 부실을 알면서도 이를 고객들에게 알리지 않고 판매했는지도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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