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사업체 마이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사회 권력층에 속한 사람들이 사회적 책임은 다하지 않고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다는 평가는 76.6%에 달했다. 특히 고위 공무원과 관료가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0.9%에 그쳤다. 노르웨이·뉴질랜드·스웨덴·캐나다·영국 등 선진국에선 고위 공무원과 관료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평균 51.9%에 달해 대조를 이뤘다.
한국 관료 사회가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관피아’(관료+마피아 : 관료 출신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때문이다. 고위 공무원이 공기업, 민간기업 등에 재취업하는 민·관 유착과 전관예우는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사회 전반에 수십 년간 쌓이고 지속돼 온 고질적 병폐를 반드시 끊어내고,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공익보다 잇속을 챙기는 관료 사회의 속성은 변한 게 없다는 평가가 많다.
관피아 방지법에도 계속되는 낙하산
지난해 개정돼 3월 말부터 시행된 공직자윤리법은 ‘관피아 방지법’이란 이름으로도 통한다. 공직자의 취업제한 기간을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1년 늘렸고, 취업제한 기관에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감독, 인허가 규제, 조달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유관단체까지 포함했다. 대상자는 퇴직 후 3년 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돼 있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취업제한 기관에는 원칙적으로 취업할 수 없도록 했다. 이를 어기고 취업제한 기관에 취업한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공직자윤리법의 틈새를 이용한 편법도 등장했다. 금융투자협회, IBK캐피탈 등 과거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출신 관료들이 퇴직 후 취업하던 곳들에는 최근 미래창조과학부, 행정자치부 등 연관이 없는 부처 출신 관료가 자리를 꿰찼다. 미래부 소관인 홈앤쇼핑 임원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인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가기도 했다. 퇴로가 막힌 고위 공무원들이 업무 연관성을 피해 다른 부처 산하기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관피아 못막는 고무줄 심사기준
‘고무줄’에 가까운 공무원 취업심사 기준을 놓고도 말이 많다. 산업통상자원부 서기관 3명은 지난달 한국냉동공조산업협회 부회장, 한국지역난방기술 사장, 한국자동차협회 상무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농림축산식품부 서기관 출신은 대두공업협회 전무로 이직하려다 ‘불가’ 판정을 받았다. 반면 다른 서기관은 한국사료협회 전무로 이직하도록 허용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장인 진영 새누리당 의원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최근 6개월간 취업심사를 받은 공무원 302명 중 ‘취업제한’ 처분을 받은 공무원 58명의 절반 가량(46.6%)인 27명이 경찰공무원 또는 소방공무원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대통령비서실, 대통령경호실, 대검찰청, 국가정보원, 감사원, 기획재정부, 법무부, 외교부, 한국은행 등 이른바 ‘힘 있는’ 부처 출신 퇴직 공직자들은 사외이사나 감사위원 등 다양한 직종에 재취업을 신청해 ‘100% 취업가능’ 처분을 받았다.
진 의원은 “세월호 참사 이후 낙하산 인사 등 민관유착 폐해를 근절하고자 개정된 관피아 방지법이 정작 관피아는 척결하지 못하고 현장·하위직급 공무원들만 차별받게 해 법의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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