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기주 황현규 기자] 올해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을 둔 박모(38)씨는 작년 봄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아이가 친구의 욕설을 듣는 게 싫다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상담 끝에 아이를 설득해 학교에 보내긴 했지만 여전히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6학년이 되는 강주현(11)양은 개학이 두렵다. 작년에 `앙 기모띠`(일본 성인물에서 유래한 말)·`보이루`(여성 혐오 표현을 담은 인삿말) 등을 쓰며 강양을 괴롭히던 남학생과 같은 반이 된 탓이다. 강양은 “기분 나쁜 말을 쓰지 말라고 따졌는데도 친구들은 `유튜브에서 본 건데 왜 유난이냐`며 도리어 화를 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새 학기를 앞두고 언어폭력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욕설이나 비하 발언 등이 나이 어린 초등학생에까지 여과 없이 전달되면서 언어폭력에 노출되는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교육현장이나 관계당국에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유튜브 영향력 증가…초등학교 교실 언어폭력 함께 늘어나
현장에서는 초등학생이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언어폭력이 심해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유튜브 진행자(BJ)가 사용하는 무분별한 언어 표현을 학생들이 여과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욕설과 음란물 등 폭력적인 콘텐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1인 미디어의 사례는 2017년 26건에서 2018년 84건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초등학생은 유튜브 내 폭력적인 콘텐츠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다. 연세대 바른ICT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은 ‘유튜브 등 동영상 시청’ 40.2%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청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박모(29) 교사는 “모든 것이 새로울 시기인 초등학생 때는 유튜브 영상을 무분별하게 따라 할 여지가 크다”며 “특히 자극적인 욕설과 영상·표현 등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황모(10)양도 “유튜브 `보겸`·`윽튜브` 등이 특히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며 “이런 유튜버들이 말하는 욕이나 단어를 친구들이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황 양은 또 “남녀 학생들이 유튜브에서 배운 `한남`· `메갈녀` 등의 단어를 쓰며 노는 것은 이젠 일상”이라고 덧붙였다.
교육현장, 관계 당국선 뾰족한 대책 없어
심지어 이러한 현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교사도 있다. 강모(36) 교사는 “아이들이 유튜브를 많이 본다는 점은 알았지만 해당 표현들을 따라하며, 교실에서 사용 하는지 몰랐다”며 “아이들이 그 표현의 의미를 제대로 알 고 쓰는 건 지도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경찰은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학교전담경찰관이 학교폭력 관련 예방교육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유명 유튜버 등의 영향으로 언어폭력에 노출되는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위해선 일반 교과목 시간을 빼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1인 미디어에 대한 제재를 담당하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감시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 관계자는 “유튜브의 경우 500분 짜리 영상이 매 1분마다 업로드 되고 있다”며 “눈에 띄는 콘텐츠를 제재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영상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 방송통신심의위에서 1인 미디어 감시를 하는 직원은 단 2명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1인 미디어가 학생들의 언어습관에도 큰 영향을 끼치면서 관련 토론회를 열고 참고하면 좋을 가이드북을 제작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유튜브 등이 민간회사라 규제를 직접하긴 어렵고 자율규제 형식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