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매개체 되고 싶어"(인터뷰)

  • 등록 2018-12-13 오전 6:00:00

    수정 2018-12-13 오전 6:00:00

유아인(사진=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커피 한 잔 마시면서 돈 생각해야 하고…. 매일매일 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예요. 20년전 이야기지만 가까운 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분량은 많든 적든 상관이 없었다. 돈의 이야기에 매료됐고, 공감했고, 그 공감이 자신뿐 아니라 전체의 공감이 될 수 있겠다는 데 마음이 동했다. 유아인이 ‘국가부도의 날’을 선택한 이유다.

‘국가부도의 날’은 13일 300만 관객 돌파가 유력하다. 영화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분투했던 대책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시절의 인간군상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사연이 대책반의 이야기에 씨줄과 날줄처럼 실속있게 얽힌다. 각 인물의 선택을 통해서 과거를 복기하고, 현재를 살피게 하는 작품이다. 유아인은 그 가운데 위기를 기회 삼아, 인생 역전을 노리는 금융맨 윤정학을 연기했다. “난파선에서 먼저 나간 사람의 생존확률이 올라가지”라며 욕망을 좇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절대로 속지 않아”라며 정부와 언론에서 주입시키는 일방적 선전에 휘둘리지 않고 직접 발품 팔아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선택하고 행동하는 인물이다. IMF 사태 당시 열두 살, 뉴스에서 매일같이 어디가 망했네, 저기가 망했네 들었지만 외환위기가 왜 발생했고 구제금융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모르던 나이였다. 그럼에도 유아인은 정학이란 인물을 통해서 영화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고 출연했다.

“정학은 서사를 끌어가는 인물은 아니에요. 그 대신 아웃사이더에서 보통 사람의 욕망을 대변하는 인물이죠. 앞날을 내다보고 주도적으로 인생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평범한 사람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인물에 투영된 욕망은 보편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국가부도의 날’을 준비하면서 인터넷을 살펴보니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이 돈·투자·재테크 이런 쪽에 관심이 많더군요.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비트코인 했다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그런 얘기들을 접하면서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지금 같은 시대를) 주도했고, 그들의 욕망이 다음 세대들에게 전이됐지만 성취보다는 결핍이 더 많고, 빈부격차는 심화됐어요. 정학이란 인물이 그것을 살피는데 이 영화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매개체로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학은 극 안에서 그 시절에 있었을 법한 청춘의 한 유형을 보여주면서 극 밖에서는 오늘날에 존재하는 기성세대의 한 유형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접점이 되는 인물이다. 유아인이 이전까지 대변했던 청춘의 캐릭터와 또 다르다. 그는, “일한 만큼만 버니까 우리가 이 모양 이 꼴 아냐”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 밑바닥 인생에 내던져진 위태로운 청춘이었고(‘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종대) “하느님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라며 타인의 관심이 불편한 반항하는 청춘이었다(‘완득이’의 완득).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또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라며 세대 갈등에 희생되는 청춘이었고(‘사도’의 사도세자) “저한테 세상은 수수께끼 같거든요”라며 부조리한 갑갑한 현실에 분노하는 청춘이었다(버닝). 현실을 비추는 작품 속 세계에서 유아인은 기성세대 또는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의 대척점에 서있었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서 인형처럼 굴기 힘든 부분이 있었어요. 기성세대에 날을 세우거나 대립하기도 했었죠. 어렸을 때에는 제가 겪은 혼란 상처들을, 인물에 대입하고 싶었어요. 힘든 세대를 대변하고 싶었죠. 그랬는데 어느 순간 저조차도 손가락질 했던 대상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하니 정신 차려야지 싶더라고요. 아마도 다음 세대가 보이기 시작해서인가 봐요. 이렇게 ‘꼰대’가 돼가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웃음).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하게 됐는데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인 것 같아요. 자신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는 것이 잘난 척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설령 그런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걱정하는 마음 그 자체를 중시하면, 다음 세대뿐 아니라 윗세대들과도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몸소 경험한 일이다. 얼마 전 아버지,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엇비슷한 감정을 느꼈단다. “‘버닝’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 세대에 대한 미움을 있었어요. 제 삶이 버겁게 느껴지고 헛헛한 마음이 들어서 전화를 했는데 그때 아버지와 연결된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네가 누구여서가 아니라 너는 원래부터 나한테는 특별한 아이야’라고 말하셨어요.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그런 과정들이 저한테는 부모세대, 기성세대를 받아들이게 하는 느낌이 있어요.”

유아인은 자신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딸, 아들이 그들의 부모에게 다 특별한 존재지 않냐”면서 “그렇게 생각하니 공감하지 못할 게 무언가 싶더라.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것, 이 영화의 현재적 의미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고 의미를 붙였다. 이는 ‘국가부도의 날’의 의미일 뿐 아니라 배우 유아인의 목표기도 하다.

“기성세대를 이해하고 동시에 후세대를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고 싶어요. 그것이 배우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고 배우로서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사도’ ‘베테랑’ 이후의 반응들이나 저에 대한 기대, 신뢰가 책임감을 주는 게 있거든요. 단순히 작품이나 배역에 대한 공감을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작품, 배역 그 이상의 확장적인 이야기, 확장적인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유아인이란 캐릭터를 의미 있게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지켜가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유아인(사진=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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