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적은 책의 시작부터 보였다. “(정부의) 여야가 바뀌더니 미술관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새로운 정권은 미술관에 대해 핍박의 칼날을 들었다”고 썼다. 그래서 “나의 시절은 지나갔다고 판단해 미술관을 나왔다”고 했다. 미술관 생활 4년을 정리할 명분을 비장하게 깔아둔 거다. 알음알음 입을 탔던 사퇴 배경, 퇴진 압박을 받았다는 정황을 조목조목 풀어내면서 말이다.
사실 윤 전 관장이 책을 낸 건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십수 권의 저서목록에 하나를 보탠 것뿐이니까.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전에 그이는 미술이론가로 평론가로 입지를 다졌다. “난 평생을 미술계 현장에서 살았다”는 말 그대로다. 단단한 이론, 생생한 경험을 엮어 한국미술사와 한국미술계를 가로로 세로로 유려하게 풀어놨더랬다.
그런데 말이다. 그 공든 탑에 최근 얹은 한 권이 영 석연치 않은 거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는 책이니 ‘뭘 이런 것까지’는 시빗거리가 못 될 수도 있다. 점을 찍든 선을 긋든 마음대로니까. 그럼에도 568쪽이란 엄청난 두께를 채운 그 내용은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이란 담장 속 에피소드, 관람객은 미처 몰랐던 얘깃거리가 그 출중한 필력을 타고 빠져나왔으려니 했던 기대는 일찌감치 무너졌고. 좀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개인의 치적을 정리하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을 배경으로 두른 듯하달까.
그래, 여기까진 그렇다고 치자. 편집권조차 저자의 영역이라면 말이다. 결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따로 있다. 뒤쪽에 두툼하게 정리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목록(2019∼2023)’ 말이다. 국립기관의 숱한 전시 타이틀이 과연 ‘윤범모’란 개인의 이름 아래 묶여도 되는 건가.
계기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근거가 설득력을 입어야 한다. 만약 윤 전 관장이 언젠가 써낼 자서전 그 한 챕터에 ‘이제야 말할 수 있다’로 꺼내놨더라면 어땠을까. 568쪽 억지저서보단 낫지 않았을까. 어디 사사로운 감정 때문이겠나. 아쉬움이다. 안타까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시작도 끝도 결국 마무리까지 진짜 쉽지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