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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 폭발’ 현상이 흥미롭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진두지휘하고 있고 시위에 적극 참여하면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의 경우 노력해도 좀처럼 변화가 없어 우울하다. 한국에 와서 이런 페미니즘의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직접 보고 교훈을 얻어가고 싶었다.”
1991년 수전 팔루디가 32살의 나이에 쓴 ‘백래시(Backlash)’는 출간과 동시에 미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당시 유수 언론사로부터 ‘단숨에 고전이 될 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에 올랐다. 예언은 적중했다. ‘백래시’는 국내외 페미니스트들에게 꾸준히 영감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페미니즘의 역사를 다룰 때 꼭 참조해야 할 필독서가 됐다.
팔루디는 이 책으로 그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지난달 16일 ‘제7회 이데일리 W페스타’의 기조연설자로 첫 내한한 팔루디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이 광고주와 소비문화에 의해 와해된 측면이 있다”며 “페미니즘은 개인의 정체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여전
페미니즘이 화제가 되면서 극단적인 남혐·여혐 현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팔루디는 페미니스트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일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에 일베가 있는 것처럼 미국에도 ‘인셀(incel·비자발적 독신자)’이 있다. 이들은 경제적 박탈감을 느껴 온라인 상에 과격한 글들을 쓰고 있다. 한국에서도 ‘여성들이 나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강남에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나. 미국의 경우 트럼프 정부와 극우파가 젊은 남성들이 일자리를 못구하는 것은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잘못된 사상을 주입한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남녀간의 대립을 끝내고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팔루디는 “이 문제는 ‘세계평화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와 같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말하며 웃었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쪽에서 서로의 고통을 들어줄 준비가 돼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흑백논리에 맞춰서 서로 자극하는데 혈안이 돼있다. 마치 ‘1차 세계대전’ 당시 누군가 피를 흘려야 내가 그만두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변화를 원해야하고 상대를 적대시해서는 안된다. 서로 공감할 준비가 돼있어야만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불평등한 상황 여전…다른 취향 이해해야”
사회에서 직접 느낀 부당한 대우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뉴스 편집자로 활동을 했는데 당시 미국의 가장 큰 이슈가 ‘권리평등과 관련한 개정안’이었다. 우리 모두가 투표해야된다고 동네에 다니면서 이야기를 했더니, 누군가가 나를 ‘극우파’로 몰아서 학교 이사회에서도 문제가 됐다. 어린 시절부터 이걸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한국사회 역시 보수적인 문화가 남아있어 ‘여성의 인권’이 더디게 변화하고 있다. 페미니즘의 태동기이지만 시작과 동시에 여러 백래시에 부딪히는 모습이다. 팔루디는 “수십년동안 남자들이 특권을 계속해서 누려왔기 때문에 그걸 놓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남성의 웰빙이 여성을 억압해서야 얻어지는거라면 그런 사회적 시스템은 절대로 정당화되어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해법으로 ‘계층간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했다. “페미니즘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변화를 일궈내야 하는 것이다. 글로벌화가 되면서 반대로 경제적 불평등은 악화되고 있다. 전 세계 1%는 풍요로운 부를 누리지만, 90%는 빈곤에 허덕인다. 극소수의 고위급 임원 여성들이 잘되고 있으니 마치 문제가 없는 것처럼 비춰질까 우려스럽다. 성별이나 인종을 넘어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했을 때 비로소 사회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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