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희 법률사무소 제이 대표변호사] 지난 6월 30일, ‘미술진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문학, 공연, 출판, 음반, 영화 분야는 개별법이 존재해 별도의 예산 편성이나 제도 지원이 가능했던 것에 반해 미술은 문화예술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개별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법이 제정됨으로써 미술 진흥을 위한 초석이 마련된 셈이다.
미술진흥법의 주요 골자는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와 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의 도입이다. 그동안 화랑업, 미술품 경매업, 미술품 자문업, 미술품 감정업 등 미술 서비스업은 별도의 규제 없이 누구나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위작 거래라든지 불투명한 거래 관행이 고착화 됐고, 미술시장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 신고제로 전환되어 미술 서비스업자에 대한 결격요건과 준수 사항이 만들어짐으로써 미술 서비스업자의 최소한의 윤리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에 대한 진품 증명서 발급, 미술품 거래 내역의 보관 등 유통 질서 확립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장치가 마련되고, 동시에 미술 서비스업에 대한 제도적 지원도 가능해졌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작가에게 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 즉 추급권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추급권은 미술품이 재판매 될 때마다 판매금액의 일정 비율을 작가에게 지급하는 제도이다. 19세기 후반 밀레의 그림 ‘만종’이 고가에 재판매돼 그림의 소유자는 고액의 수익을 얻은 반면 가난했던 밀레의 유족은 어떤 이득도 얻을 수 없었던 상황을 두고 이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대두되며 작품이 재판매될 때마다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원저작자인 작가 또는 유족에게 배분하기로 하는 법이 제정됐다. 이 추급권은 1920년 프랑스에서 처음 도입된 이후 지금은 전 세계 80여 개국이 넘는 국가들이 보장하고 있다. 한·EU FTA 체결 당시 EU는 우리나라에 추급권 도입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국내 미술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미술시장 위축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오랜 논의에도 도입하지 못했으나 미술진흥법 통과로 그 논의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제 이 두 가지 제도의 도입으로 우리나라 미술 유통 시장은 큰 변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작가의 권익 보장과 건전한 미술품 유통 문화의 확장을 기대하며 반기는 목소리가 대다수이지만 ‘미술진흥’이 아니라 ‘미술규제’가 될 것이라며 오히려 시장의 위축이 될 거라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신고제로 전환돼 기존에 없던 의무를 부담해야 할 화랑업 등 미술 서비스업자들의 반발은 심상치 않다. 이는 미술진흥법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지난한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이번에 통과된 미술진흥법안은 2021년 발의돼 2년 만에 통과된 것이지만 사실 20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3차례나 ‘미술품 유통법’이라는 이름으로 발의됐다가 시장 위축 우려를 이유로 업계의 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결국 회기 만료로 폐기된 이력이 있다. 그리고 가장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추급권인데, 미술품이 재판매 될 때마다 일정 비율을 추가로 부담해야 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미술품 유통이 오히려 음성화 될 것이라는 이야기부터, 매매가에서 일정 비율을 추가로 부담해야 되기 때문에 미술품 가격이 높아질 것이라거나 오히려 첫 구매 때부터 가격을 낮춰 판매할 수밖에 없다는 여러 걱정도 나오고 있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듯이 법도 마찬가지이다. 법에 따른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이득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미술 서비스업자에 대한 부담이 작가나 소비자에게는 이득으로 작용할 수 있고, 또 같은 미술 서비스업자 사이에서도 대형 화랑과 중소형 화랑의 입장이 다를 수도, 작가 사이에서도 유명 작가와 신진 작가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은 개별적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고,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법의 존재 가치이다. ‘미술진흥법’은 작가와 서비스업자, 소비자, 이 중 누구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위축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이 세 축을 균형 있게 보호해 궁극적으로 미술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 것일 뿐이다. 더구나 아트 테크 기업의 등장, 미술품 조각투자와 저작권 지분투자의 합법화 등 미술시장이 산업으로 한 단계 발돋움 할 수 있는 현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법이라 하겠다.
이제 공은 다시 정부로 돌아왔다. 법이 추구하고자 하는 취지가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업계의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를 반영한 합리적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제정해 부작용을 최소화 해야 한다. 미술 규제가 아니라 미술 진흥을 위한 문체부의 운용의 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