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타계하며 남긴 1만 3000여 점의 미술품이 미술계뿐만 아니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감정가액이 2조~3조원에 이르고 다른 상속재산까지 합치면 상속인들이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가 13조원에 가까운 상황을 두고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는 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상속세 물납제는 미술계가 10년 넘게 주장해오고 있는 오랜 숙원 사업이다.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가의 입장에서는 문화적 자산을 풍부하게 할 수 있고, 이를 공공재로 환원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하게 되면 더욱 많은 국민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더불어 미술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해외의 유명 미술관의 소장품이 자체 예산으로 구입하기보다는 대부분 기부와 기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건희 컬렉션’처럼 유수의 작품들을 국가가 확보해 내실 있는 미술관을 세워 다수가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또 일각에서는 ‘이건희 컬렉션’은 진귀한 작품들의 보고(寶庫)이기에 상속인들이 상속세 마련을 위해 작품들을 해외 경매시장에 매각한다면 이는 국가적 손실이라고 주장한다. 피카소 작품의 해외 반출을 막으려고 피카소 작품으로 상속세를 물납해 만든 프랑스 피카소 미술관의 사례를 보면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의 해외 반출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납제 도입을 추진하며 항상 거론되는 프랑스나 영국 역시 단순한 편의 수단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 국가적 중요 자산이 국내에 보존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점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상속인이나 특정인을 위한 개인적 차원의 혜택이 아니라 문화적 자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추진해 국민적 반감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미술 시장의 건전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확보, 공익 추구라는 뚜렷한 방향성이 바탕이 되어야 상속세 물납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제도 개선도 손쉽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문화적 향유 확대’를 위한 건전한 제도로써 결실을 맺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