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미가 전하는 4차산업과 예술

이상미 이상아트 대표
AI에 의한 소설 창작 프로젝트,'소설쓰는 인공지능'
  • 등록 2019-04-14 오전 6:00:35

    수정 2019-04-14 오전 6:00:35

[이상미 이상아트 대표] “그 날은 공교롭게도 이슬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일상 업무에 몰두하는 형태로 앞으로 5년간의 경기 예상과 세수입 예상. 그 다음은 총리로부터 의뢰받은 시정방침 연설의 원고 작성. 어쨌든 멋지게 역사에 남을 수 있도록, 엉뚱한 요구가 남발돼 조금 장난도 쳤다.

이상미 이상아트 대표
이후 재무부로부터 의뢰받은 국립대학 해체의 시나리오 작성. 조금씩 빈 시간에 이번 G1 레이스의 승리마 예상. 오후부터는 대규모 연습을 이어가는 중국군의 움직임과 의도의 추정. 30개 가까운 시나리오를 상세히 검토하고 자위대 전력 재배치를 제안한다. 저번에 주문받은 최고 재판소의 주문도 대답해야 한다.”

일본에서 인공지능이 쓴 소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의 일부다. 일인칭 시점으로 주인공은 컴퓨터 속의 인공지능이다. A4 용지 3페이지 분량의 단편소설로 2016년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최한 일본의 호시 신이치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일본 공립 하코다테 미래대 마쓰바라 진 교수팀은 2012년 ‘AI 소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인공지능은 일본 SF소설가 호시 신이치의 소설 1000 여편을 학습했다. 연구팀은 ‘언제’, ‘어떤 날씨에’, ‘무엇을 하고 있다’ 같은 6하 원칙의 요소를 포함하게 했다. 인공지능은 이에 맞은 단어로 문장을 만든다.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는 상황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미 언론사에서는 증권 기사를 작성하는 로봇 기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기사를 넘어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었던 소설이나 시 같은 글쓰기에도 결국 인공지능이 도달했다.

중국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시집이 출판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4년 중국에서 ‘샤오이스’(Xiaoice)를 개발했다. 인공지능 시인 샤오이스는 1920년대 이후 중국 시인 519명의 시를 공부했다. 1만 편이 넘는 시를 지었다. 이중 139편을 골라 2017년 시집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Sunshine Misses Windows)를 펴냈다. 제목은 샤오이스가 직접 지었다. 시집은 10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고독, 기대, 기쁨 등 사람의 감정이 담아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2018년 통신사 KT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쓴 소설을 모집하는 ‘인공지능소설 공모전’을 열었다. 최우수상에 상금 3000만원, 우수상에 2000만원이 걸린 이 공모전에 개인과 스타트업을 포함해 총 31개팀이 참가했다.

인공지능 작가는 소설과 시를 넘어 영화 시나리오에도 도전하고 있다. 2016년 4월 열린 사이파이 런던 영화 페스티벌에 ‘썬 스프링’(Sun Spring)이라는 8분가량의 단편영화가 상영됐다. 인공지능이 쓴 시나리오로 만든 최초의 영화이다. 컴퓨터 공학자인 로스 굿윈과 영화 감독 오스카 샤프가 개발한 인공지능 ‘벤자민’(Benjamin)이 시나리오를 썼다. 벤자민은 1980~1990년대 SF영화와 TV 프로그램 각본으로 학습했다.

캐나다의 소설가 얀 마텔은 소설 ‘파이 이야기’로 2002년 맨 부커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소감을 통해 “소설의 운명은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라고 말했다. 인간 소설가를 넘어서는 인공지능 소설가가 나타날까?

인류는 예술의 정점에 서기 위해 수년 또는 수십 년간 노력해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이 미술, 조각, 수학, 과학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친 천재도 있었지만 대개 한 분야에 특화된 예술가들이 존재해왔다.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우리는 그림도 잘 그리고 음악도 잘 만들도 소설도 잘 쓰는 다방면에 걸친 천재 인공지능을 보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을 두고 예술가라고 칭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이지만 결국 우리가 풀어내야 할 숙제다. 4차 산업으로 예술계에 펼쳐질 지각 변동을 우리는 곧 마주하게 된다.

◇이상미 대표는 프랑스 정부 산하 문화 통신부로부터 ‘프랑스 문화 자산 및 문화 서비스 전문가’ 자격증을 외국인 최초로 수석으로 2010년에 취득했다. 파리 현대 미술 갤러리 및 드루오 경매회사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서래마을에 있는 이상아트 스페이스에서 회화, 설치, 조각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시와 문화예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경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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