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한 장면이 주옥같은 이 화첩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문화재 중 하나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1930년 일본 오사카 고미술상에서 구해 보존처리를 한 뒤 소장해왔고, 1970년 국보(당시 제135호)로 지정됐다.
‘혜원전신첩’이 새삼스럽게 뜨거워진 건 최근이다. 간송미술관이 ‘혜원전신첩’에 든 풍속화 30점을 NFT(대체불가능토큰)로 발행한 뒤 순차적으로 판매하겠단 사업계획을 내놓으면서다. 말만도 아니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먼저 그중 한 점인 ‘단오풍정’을 6개 부문, 355개로 쪼개 제작한 ‘NFT 작품’을 팔았는데. 조각당 0.08이더리움(당시 약 18만원)이란 가격과는 그다지 상관없이 355개 모두가 팔렸다.
사업의 출발은 성공적이었지만 간송미술관에는 또다시 불편한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국보로 어떻게 돈벌이를 하느냐’는 거다. 그나마 지난해 7월 ‘훈민정음 해례본’을 NFT로 제작했을 때의 충격보단 약하다고 할까. ‘훈민정음 해례본’은 1개당 1억원씩, 한정판 100개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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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문화재·미술계에서 수없이 덤벼든 NFT 행보 중 가장 눈에 띈다고 할 만하다. 일례로 지난 2월 국내 3대 화랑인 갤러리현대는 김환기·이중섭 등의 작품으로 ‘NFT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더랬다. ‘6월쯤 진행을 전하겠다’고도 했다. 마땅히 NFT의 판도를 뒤집는 ‘시즌2’를 기대케 했지만 아직까지 ‘화끈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오해는 말자. 잘못하고 있단 얘기가 아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란 뜻이다. 관점을 바꿔 실행을 만들고, 패턴을 바꿔 결과를 만드는 일은 누구에게도 녹록지 않다. 게다가 태생의 무게를 짊어진 간송미술관이라면 그 고민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터.
누구도 국보를 NFT로 제작할 수 있단 생각은 미처 못했다. 그 처음에 선 일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모는 건 부적절하다. 국보고 보물이니 수장고에 고이 모셔두는 게 최선이란 잣대론 간송의 행보를 따라잡기에도 역부족이다. 혜원이 특별한 건 ‘그림을 잘 그려서’만이겠나. 시대와 대중이 뭘 보고 싶어했는지를 제대로 꿰뚫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