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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미술계, 아니 온 나라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가 사상 처음 국내 미술품 경매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그냥 국보여도 놀랄 일인데 ‘누가 내놨는가’를 살펴보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간송미술관’이다.
경매에 오를 국보는 2점. 국보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제72호·563년 추정)과 국보 ‘금동삼존불감’(제73호·11~12세기)이다. 모두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불교 문화재다. 케이옥션이 올해 첫 메이저경매로 여는 ‘1월 경매’에 출품한 이들 국보 2점은 각각 추정가 32억~45억원(‘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과 추정가 28억~40억원(‘금동삼존불감’)을 달고 나서게 된다. 운명을 기탁할 새 주인을 찾는 거다.
혹시 데자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태 남짓 전인 2020년 5월,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는 ‘핵폭탄급 파문’이 휩쓸고 지나갔던 터라서다. 간송미술관이 82년간 소장해온 ‘보물’ 2점을 미술품 경매에 내놨던 건데. 사실 보물이 경매에 등장하는 것은, 흔하진 않지만 없던 일은 아니다. 문제는 간송미술관이어서다. 간송미술관이 내놨기 때문에 사안은 일파만파 번져나갔던 거다.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일제강점기 전 재산을 들여 일본에 유출되는 문화재를 사들였던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수집품을 3대에 걸쳐 정리·연구·관리해온 간송미술관을 향한 대중적인 신뢰 말이다. 게다가 그 사유란 것도 기가 막혔더랬다. 재정난이 커져 도저히 운영할 수 없어서였다니. 그런데 이번엔 그 간송미술관에서 국보가 튀어나온 거다. 재정난이 여전히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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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반출·판매만 금지…소유자 변경신고만 하면 거래 가능해
정답부터 말하자면 ‘그렇다’다. 경매에 내놓을 수도 있고, 사고팔 수도 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도 개인이 소장한 경우 ‘소유자 변경신고’를 하면 거래할 수 있어서다. 다만 전제가 있다. ‘국외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보나 보물을 취득한 뒤 문화재청에 신고해야 하고 해외로 반출·판매하는 것은 금지한다. 결국 대한민국 영토를 벗어나지 않는 한, 사고파는 거래내용을 문화재청에 알리기만 하면 소유자가 누가 되든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이제껏 국보를 경매시장에서 거래한 경우는 전무하지만, 보물은 간간이 보였다. 우선 2020년 케이옥션에 간송미술관이 내놨던 바로 그 보물 ‘금동여래입상’(제284호·7세기)과 ‘금동보살입상’(제285호·6~7세기)이 있다. 시작가 15억원씩에 출품했다. 같은 해에는 케이옥션에 추정가 50억∼70억원을 달고 나온 보물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제1796호)도 있었다. 다만 두 경우 모두 사겠다는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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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서울옥션에서 35억 2000만원에 낙찰된 ‘청량산괘불탱’(보물 제1210호)은 보물만이 아니라 기존 문화재 경매 거래 최고가 기록을 가지고 있다. 뒤이어 2012년 케이옥션에서 34억원에 팔린 ‘퇴우이선생진척첩’(보물 제585호), 2015년 서울옥션에서 18억원에 팔린 ‘의겸등필수월관음도’(보물 제1204호)가 있다. 이외에도 2018년 ‘묘법연화경 권4-7’(보물 제766-2호), 2017년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3’(보물 제948호), 2015년 ‘월인석보 권9·10’(보물 제745-3호) 등이 서울옥션에서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보물이 경매장에 나타날 때마다 아무리 개인 재산이라도 국가가 지정·관리하는 문화재를 소유자나 시기 등에 아무 제약 없이 팔 수 있게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지적은 끊임없이 있어 왔다.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은 NFT로 제작하기도
‘훈민정음 해례본’ NFT 사업의 배경에도 ‘재정난’이 있었지만 논란은 적잖았다. 당시에는 ‘국보를 소장기관이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문화재청은 “국내에는 거의 없는 사례”라며 “법률 근거를 포함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는 했지만 막아설 수 있는 근거는 없었다. 어쨌든 사유재산이라, 상태를 변경하거나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영리사업을 한다 해도 국가가 제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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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나온 국보 2점, 얼마에 어디로 팔려가나
그간 경매에서 팔린 보물들이 어디로 가 있는지, 전부는 알 수 없다. 국·공립기관이 아닌 개인소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살아생전 다시는 못 보게 되는 일도 생기는 거다. 그렇다고 낙찰자를 고를 수는 없는 노릇. 간송미술관의 ‘보물 금동불상’ 2점은 그나마 운이 좋았다고 할까. 유찰된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2점 모두를 사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총액은 30억원 안쪽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국보 2점 역시 얼마에 팔려 어디로 갈 것인가가 다시 뜨거운 관심거리가 됐다. 지난번 간송미술관의 ‘금동불상’이나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의 선례에 비춰볼 때, 이들이 유찰된 건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부담감에 이유가 있었다. ‘큰손’ 개인컬렉터나 기업문화재단 등이 선뜻 나서지 못했던 거다. 때문에 이번에도 시선은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하게 됐다. 하지만 한 점 구입에도 빠듯해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한 해에 유물 구입에 쓸 수 있는 비용은 약 40억원이다. 어쨌든 복수의 응찰자가 나서 경합이 치열해지면 이번 국보 거래에는 문화재 경매사상 최고가 기록이 붙을 수도 있다.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국보 2점의 주인을 바꿀 경매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