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박수근, 일제강점기 징병독려 그림 그렸다"[박수근 행적 의혹①]

배원정 박사 '미술사논단' 발표 논문서 주장
평남도청 서기로 근무하던 시절
중일전쟁 선전 '종이연극' 그려
"베일 가려진 춘천·평양 시기복원
안타깝지만 덮는 것도 만용인 듯"
  • 등록 2022-07-26 오전 12:01:20

    수정 2022-07-26 오전 12:01:20

1960년대 서울 창신동 집 마루에 앉아 있는 박수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 전시한 사진을 다시 촬영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이제껏 드러나지 않은 행적이 밝혀졌다. 구체적으로는 일제강점기 막바지, 흔히 ‘박수근의 춘천·평양시절’이라고 말하는 1935년부터 해방 이전까지다. 그간 박수근에 관한 작가연구가 수없이 이뤄졌고 작품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일대기가 정리·발표돼 왔으나 얼버무리듯 건너뛰었던 춘천과 평양에서의 활동이 최근 한 연구에서 파악된 것이다. 문제는 그간 놓쳤던 혹은 이미 알려진 기록을 바로잡는 데에서 나아가 ‘친일’을 의심케 하는 행적까지 수면 위로 떠오른 데 있다.

친일로 볼 만한 박수근의 행보 중 시선을 끄는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평양에서였다. 1940년 평남도청 서기로 취직돼 평양으로 이전한 뒤에 수행했던 업무가 중일전쟁(1937년 발발) 시기 농어촌주민을 대상으로 ‘종이연극’(가미시바이)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렸던 일이다.

일제가 식민지정책 중 하나로 이용한 종이연극은 당시 일본어를 모르는 주민들을 모아놓고 국책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 효과적인 선전도구였다. 내용은 ‘징병제 선전’을 비롯해 ‘전쟁시기의 시국인식 강화’ ‘군사사상보급’ ‘세금납부인식교육’ 등 일제가 추진한 모든 정책을 포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수근의 이 같은 행적은 근대미술사를 연구하는 배원정 홍익대 미술사학 박사(41·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최근 발표한 논문 ‘신예 화가 박수근의 등단: 춘천과 평양에서의 초기 미술활동을 중심으로’(‘미술사논단’ 제54호 2022·상반기)에서 나왔다.

배 박사는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한국근현대화단을 대표하는 박수근이지만 그의 화풍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해방 이전 춘천과 평양에서의 행적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어 항상 아쉬웠다”며 “이번 연구는 사각지대에 놓였던 박수근의 초기생애를 복원하는 것으로 한 작가를 온전히 파악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덮어두자고 결정하는 것도 만용이라 생각했다”며 “한 작가를 신화화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박수근은 물론 한국근현대미술을 보다 세심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수근은 김환기(1913∼1974), 이중섭(1916∼1959)과 더불어 한국근현대미술에서 반드시 꼽아야 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특히 ‘국민화가’란 애칭에 실어냈듯 박수근을 향한 관심과 애정은 여느 화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일례로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연 박수근의 대규모 회고전 ‘봄을 기다리는 나목’(2021년 11월 11일∼2022년 3월 1일)을 둘러본 관람객은 11만 4000여명에 달한다. 코로나19 시국과 맞물려 사전예약으로 관람객 수를 제한한 상황에서도 그랬다. 소장자도 다르지 않다. 특히 이건희(1942∼2020) 회장의 박수근 사랑은 남달랐다. 지난해 ‘이건희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박수근미술관에 나뉘어 기증된 소장품 수만 유화·드로잉 등 총 33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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