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간송의 보화각으로…"소장품, 더는 경매에 내놓지 않겠다"

간송미술관, 7년6개월 만에 보화각서 연
'보화수보: 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 전
보존처리 마친 문화재 8건 32점 내놓아
'매헌선생문집' '해동명화집' 최초 공개
보화각 보수전 마지막전시…빈전시실도
전인건 관장 "국보 경매, 팔을 끊는 심정"
  • 등록 2022-04-19 오전 12:01:00

    수정 2022-04-19 오전 12:01:00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보화각에 연 ‘보화수보’ 전 전경. 7년 6개월 만에 다시 연 보화각 기획전에서 명화 30점이 든 ‘해동명화집’을 최초로 공개했다. 신사임당의 ‘포도’, 안견의 ‘추림촌거’, 정선의 ‘강진고사’, 심사정의 ‘삼일포’ 등 전시에는 그중 12점을 꺼내놨다. 작품들 위로는 2점을 꺼내놨다. 작품들 위로는 보존처리 작업을 설명하는 글과 사진을 붙여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사연이 길다.’ 할 얘기가 많지만 풀어내기도 수월치 않을 때 이렇게들 말하지 않나. 감정에 복받치고 억울하기도 할 테고. 왜 아니겠나. 그 지난한 사정을 채 전하지도 못한 일이 그토록 아픈 화살로 꽂힐 줄 몰랐을 테니. 지난 2년여간 간송미술관에서 벌어진 일 말이다.

“팔을 끊는 것 같은 심정으로 했던 일이다.” 결국 긴 사연을 이 한마디로 아우른 전인건(51) 간송미술관장이 잠시 울컥했다. 그러곤 이내 “앞으로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보물·국보를 지키려 보물·국보를 파는 아이러니를 더는 만들지 않겠다는 얘기다.

간송미술관이 신라시대 ‘보물’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은 건 2020년 5월. 세상을 발칵 뒤집은 이 일이 재정난 탓으로 드러나자 동정의 여론까지 들끓었다. ‘간송’의 보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수익원도, 정부지원도 없던 퍽퍽한 형편이 ‘대쪽 같은 간송 집안의 고집’에서 비롯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지원을 받으면 간섭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니까. 어쨌든 경매에선 유찰됐던 보물을 국립중앙박물관이 30억원 미만에 모두 사들이고, 상황은 무마되는 듯했다.

간송미술관 보화각 ‘보화수보’ 전에 나온 ‘해동명화집’ 수록 12점 중 일부. 오른쪽부터 심사정의 ‘삼일포’와 ‘와룡암소집도’, 강세왕의 ‘묵란’ 등이 나란히 놓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잊힐 만했던 논란이 다시 불거진 건 지난 1월. 이번엔 간송의 6세기와 11∼12세기 불교유물 ‘국보’ 2점이 또 경매에 나온 거다. 이번엔 만만치 않았다. ‘보물’ 때 안쓰럽게 바라보던 세간의 시선이 ‘국보’ 때는 싸늘하게 식고 있었다. 게다가 그중 한 점이 외국계 암호화폐투자자 모임 헤리티지 다오에게 25억원에 넘어갔다는 얘기가 돌자 비난까지 쇄도했다. ‘도대체 운영을 어떻게 하고 있기에.’ 그 날선 칼끝은 온전히 전 관장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미술관 부채 해결 않으면 미래 기약 어려웠다”

이후 전 관장이 처음으로 입을 뗐다. “서화·도자에 선택·집중하고 불교유물을 매각해, 미술관 부채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겠다는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뼈아픈 부분”이란다. “다른 사립미술관과 달리 모기업이나 수입원이 있지 않다. 201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지정문화재(국보·보물)는 상속세를 내지 않지만 우리가 지정문화재만 가진 게 아니지 않느냐.”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지난 15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모처럼 입을 열었다. 그간 논란이 됐던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보물을 경매에 내놨던 일을 두고 “미술관 부채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겠다는 사정이 있었다”면서 그래도 “뼈아픈 부분”이라고 털어놨다(사진=오현주문화전문기자).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장손이자 전성우(1934∼2018) 전 간송미술관장·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의 아들. 그렇게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전 관장에게 얹힌 짐은 간단치 않다. 1938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보화각’이란 이름으로 세운 간송미술관(1971년 개칭)을 지키고, 간송이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관리하는 그 일 말이다. 조부와 부친의 이름에 누가 돼선 안 될 뿐더러 유지·관리에 한 치 틈이 생겨서도 안 되는, ‘명예’와 ‘현실’ 둘 다를 잡아야 하는 일이었다. 두들겨 맞을 줄 뻔히 알면서 간송의 보물·국보를 그것도 떠들썩하게 세상에 내놨던 건 어느 하나를 버리자는 게 아니었던 거다. 하나도 못 버리니, 매를 자청하겠단 거였다.

간송미술관 보화각 기획전 ‘보화수보’ 전경. 민영익의 난그림 72점을 묶은 ‘운미난첩’ 중 8점을 꺼내놨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사실 전 관장의 ‘파격’은 2014년부터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 시절, 미술관 담 밖으론 한 걸음도 떼지 않았던 소장품을 대거 이끌고, 낡고 좁은 보화각을 떠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기획전을 감행한 거다. 1971년 첫 기획전 이후 42년 만에 감행한 ‘빗장풀기’였다. 관람객이 세운 몇백미터의 줄을 사라지게 한 뒤 그이는 “잘한 선택”이라고 했다.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리는 게 할아버지의 유지였으니까”라고. DDP가 간송 소장품과 맞느냐는 둥, 40여년 무료전시 관행을 깨고 입장료를 받은 건 상업화 수순이라는 둥 입방아가 쏟아졌지만 그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약속한 5년 뒤, 2019년 1월 마지막 외부전시 ‘3·1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을 열며 “오는 가을 수장고 공사를 끝내는 대로 성북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재정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퍼졌고, 보물·국보가 차례로 경매에 나왔던 터였다.

7년 6개월 만에 다시 연 간송미술관 보화각 ‘보화수보’ 전에서 ‘해동명화집’을 최초로 공개했다. 명화 30점이 든 ‘해동명화집’에선 12점을 꺼내놨는데, 오른쪽에 보이는 그림이 5만원권 지폐 도안에 실린 신사임당의 ‘포도’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7년여 만에 만나는 간송의 보화각 보물들

결국 어려운 길을 돌고 돌아 처음 그 자리 보화각으로 돌아왔다. ‘늘 해오던 그 일’을 다시 하기로 한 거다. 해마다 봄·가을 열던 보화각 기획전은 뙤약볕 아래 관람객을 길게 줄 세워 더 유명했더랬다. 그 진풍경이 훌쩍 사라진 지 7년 6개월 만에 다시 연 전시는 ‘보화수보’(寶華修補) 전. 아예 ‘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로 부제를 달았다. 2년에 걸쳐 진행했다는, 간송미술관 소장품 중 보존처리한 150여건 중 8건 32점을 골라 내놨다.

지정문화재가 아니라지만 그 이름들이 이미 그에 버금간다. 세종의 스승이던 문인 권우(1363∼1419)의 시문집 ‘매헌선생문집’ 초간본과 더불어 조선후기 대표적 서화수장가인 김광국(1727∼1797)이 수집한 그림을 모아 엮은 ‘해동명화집’을 최초로 공개했다. 신사임당의 ‘포도’, 안견의 ‘추림촌거’, 정선의 ‘강진고사’, 심사정의 ‘삼일포’ 등 명화 30점이 든 화첩이다. 조선말기 문인 민영익(1860∼1914)의 난그림 72점을 묶은 ‘운미난첩’도 꺼내놨다. 서화로는 조선중기 화원화가 한시각(1621∼?)의 ‘포대화상’, 김명국(1600∼?)의 ‘수로예구’, 김홍도(1745∼1806)의 ‘낭원투도’, 장승업(1843∼1897)의 ‘송하녹선’ 등이 시선을 잡는다.
간송미술관 보화각 기획전 ‘보화수보’ 전에서 최초로 공개한 ‘매헌선생문집’ 초간본. 세종의 스승이던 문인 권우의 시문집이다. 그 위로 보존처리 작업을 설명하는 사진이 붙어 이해를 돕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보존처리’가 열쇳말인 만큼, 어떤 부분을 어떻게 했는지 작업에 대한 설명을 함께 걸어 이해를 돕는다. 백인산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1971년 간송미술관이 전시를 시작한 이래 101번째”라며 “지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고 상태가 좋지 않아 대대적으로 보존처리한 유물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공간’도 전시한다. 진열장을 싹 비운 ‘보화각 2층’이다. 옛 보화각에서 여는 마지막 전시를 기념한 거다.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보화각은 이번 전시를 끝으로 1년 6개월여간 보수·정비에 들어간다. 간송이 일본에 의뢰해 중국서 제작해 받았다는 빈 화초장만이 덩그러니 놓인 공간엔 보화각의 역사를 더듬는 9분짜리 영상(‘흐름: 간송, 보화각’)만 돌아가는데. 결국 문화재 안에서 문화재를 감상케 한 거다.

7년 6개월 만에 다시 연 간송미술관 보화각 ‘보화수보’ 전에 걸린 김홍도의 ‘낭원투도’(왼쪽)과 장승업의 ‘송하녹선’.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지정문화재가 아니라지만 그 이름과 수준은 이미 그에 버금간다(사진=간송미술관).


이번 전시와 함께 전 관장의 고뇌는 결론을 맺은 듯하다. “역사·스토리·콘텐츠가 있는 곳이니, 보화각 이후 상설전시장을 중장기적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부채와 관련한 문제는 대부분 해결됐다”며 “심려 끼치는 일은 더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1만 6000여점. 이 중 국보가 12점이다. 이들을 위해 전 관장은, 간섭이 싫다며 조부와 부친이 거부했던 외부지원을 받기로 했다.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지원한 60억원을 받아 보화각 옆에 지은 수장고 완공에 보탰다. 지난 1월 착공한 대구 간송미술관 건립에는 국비와 지방비 400억원을 들였다. 비지정문화재 197점에 대한 보존처리·훼손예방에도 국비·지방세 12억원을 지원받았다.

전시는 6월 5일까지다. 좁은 공간에 몰린 관람객에게 미안해 2013년에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예약제’를 이번엔 제대로 해보겠단다. 1시간에 70명 정도 관람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보화각 2층’. ‘보화수보’ 전의 특별한 출품작인 이 공간에는 간송이 일본에 의뢰해 중국서 제작해 받았다는 빈 화초장들만 덩그러니 놓였다.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보화각은 이번 전시를 끝으로 1년 6개월여간 보수·정비에 들어간다. 그 이후엔 사라질지 모를 공간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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