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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슬쩍 들여다본 그곳은 동굴 같기도 하고, 좁은 방 같기도 하다. 그렇게 마치 어두운 장소에 눈이 적응하듯 한참을 들여다보면, 그제야 갈색톤 화면에 흐릿한 뭔가가 잡힌다. 한데 엉켜 있는 누군가의 형상이다. 허공을 향해 이리로 저리로 뻗어나온 손도 보이고 발도 보이는 걸 보니, 이들은 몸싸움 중인 거다. 씨름을 하는지, 레슬링을 하는지.
이중섭(1916∼1956)이 두 아들과 뒤엉켜 노는, 즐거웠던 한때를 그린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1952∼1953·31.0×48.5㎝). 실제인지 꿈인지 불분명한 이 장면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에 이주한 제주에서 이중섭이 가족과 보낸 한때를 추억한다. 1년 남짓한, 이후엔 다신 없던 참으로 짧았던 이 기간은, 이중섭에게 몸은 고달팠으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됐다. 해초나 게, 물고기를 잡아 연명하는 생계의 어려움에도 두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가슴 벅찬 감동은 이후 이중섭의 작품들에 진한 흔적을 남겼다. 환한 표정들로 채운 그림에는 이들 곁에 둔 게·물고기조차 덩달아 즐겁다.
애잔함을 잔뜩 묻혀, 색으로 화면 안팎을 나눈 배치가 독특한 이중섭의 이 작품이 국내 경매에 ‘다시’ 나온다. 28일 서울 강남구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여는 ‘제167회 미술품 경매’에서다. 추정가는 7억∼10억원이다.
이중섭 1억 5천만 올려…천경자 같은 작품으로 최고가 또 경신?
이번에 ‘리세일’에 나선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은 2017년 6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5억 5000만원을 부른 새주인을 따라나섰던 작품이다. 당시 추정가는 5억 5000만∼9억원. 5년 만에 몸값 1억 5000만원을 올려 다시 시장에 나온 거다.
이중섭이 그린 또 한 점의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1953∼1954·37.4×46.8㎝) 역시 경매시장에서 거래되기도 했다. 갈색보다 진한 푸른배경이 화면 전체를 휘감고 뒤엉킨 두 아들과의 한때를 한층 선명하게 묘사한 작품은 2020년 9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11억원에 팔렸다.
서울옥션의 이번 경매는 유독 ‘리세일’에 나선 대가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굵직한 작품으론 천경자(1924∼2015)의 ‘초원Ⅱ’(1978·105.0×129.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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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매에 출품한 ‘초원Ⅱ’는 천경자가 1974년 아프리카 여행에서 받은 감동을 옮겨놓은 작품이다.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야생동물들이 유유히 거니는 낙원을 묘사했는데, 화려한 색을 화면 곳곳에 등장시키며 특유의 원시적인 생명력을 부각시켰다. 그럼에도 천경자 특유의 이상적·비현실적 분위기가 도드라지는데. 특히 코끼리 등위에 엎드린 나체의 여인을 작가의 분신처럼 내세워 쓸쓸하고 고독한 정서까지 담아냈다.
이제껏 거래한 케이옥션에서 이번에 서울옥션으로 장을 바꾼 ‘초원Ⅱ’는 추정가를 여전히 조율 중이란다. 하지만 기존에 가진 작품가 20억원은 훌쩍 넘길 시작가가 예상돼, 낙찰될 경우 같은 작품으로 ‘작가 최고가’를 또 경신할 수 있다.
이우환 ‘선으로부터’ 2년 만에 3억원 오른 작품가로 출품
이우환(86)이 1978년 그린 50호(91.0×116.5㎝) 규모의 ‘선으로부터’(From line)도 ‘몸값 올린 리세일’에 동참한다. 2020년 12월 서울옥션에 출품했던 작품은 6억 1000만원에 팔렸더랬다. 당시 추정가는 5억∼10억원. 역시 이번 서울옥션 경매에 ‘다시’ 나서면서 추정가를 9억∼12억원으로, 50% 이상 올려놨다.
작가의 1970년대 작업은 점을 찍거나(‘점으로부터’), 선을 긋는(‘선으로부터’) 행위로 ‘무한’을 탐구하는 일이었다. 반복적인 그 작업을 통해 첫 시작인 생성과 마지막 종결인 소멸에 이르는 과정을 한 화면에 고스란히 박아냈는데. 이번 출품작도 다르지 않다. 일획·일필의 곧고 일정한 선을 가지런히 정렬해 정연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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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수작들 하나둘씩 국내 경매시장으로
이번 6월 미술품 경매의 특징이라면 ‘경매 최고가 작품’의 자리를 그간 보지 못한 ‘해외 작품’들이 넘보고 있다는 거다. 케이옥션에선 미국작가 힐러리 페리스(43)의 ‘물고기와 새’(Fish and Bird·2019·127×101.6㎝)가 눈에 띈다. 추정가 18억∼20억원을 달았다. 작품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정물은 정물인데 여느 정물 같지 않은 세련된 정물화’라고 할까. 기하학적 패턴을 꽃·병·액자·새 등 디테일한 사물과 연결한, 높은 채도와 선명한 컬러가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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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옥션에선 스위스작가 니콜라스 파티(42)의 ‘정물화’(Still Life·2015·130.2×140.0㎝)가 나선다. 추정가는 40억∼50억원. 유화나 아크릴물감이 대세인 회화작업에 섬세하고 민감한 파스텔을 무기로 잡은 독특한 화풍이 특징이다. 푸른 바탕에 빨갛고 노랗고 파란 대형과일을 올린 작품은 지나치게 정갈한 선과 면, 색 덕에 차라리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덕분에 입체감·공간감보단 되레 조형미와 평면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작가 스탠리 휘트리(76)의 회화 두 점이 양쪽 경매에 동시에 출품한 것도 시선을 끈다. 케이옥션에선 2018년에 그린 ‘무제’(30.5×30.5㎝)가, 서울옥션에선 2009년에 그린 ‘무제’(30.7×30.7㎝)가 나선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기하학적 구조에 영감을 받는다는 작가는 색을 쌓아 격자무늬 그리드를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두 점 모두 추정가 1억 3000만∼2억원을 달고 응찰자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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