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국내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와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가 동시에 개막한다. 초호화 ‘한 지붕 두 페어’가 될 두 아트페어에는 컬렉터 심장을 뛰게 할 걸작이 줄줄이 출품을 예고했다. 그중 파블로 피카소의 ‘술이 달린 붉은 모자를 쓴 여자’(1938, 프리즈 마스터즈의 애콰벨라갤리리즈·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지 콘도의 ‘붉은 초상화 컴포지션’(Red Portrait Composition·2022, 프리즈의 하우저앤드워스), 루이스 부르주아의 ‘회색분수’(1970∼1971·프리즈의 하우저앤드워스)(사진=프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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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문을 열어젖히고 손님 맞을 일만 남았다. 수많은 입과 입이 이미 절반을 펼쳐낸 ‘소문난 미술잔치’ 말이다. 9월의 시작과 함께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와 세계 정상급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가 서울에서 동시에 열리는, 대한민국 사상 최대 미술판이 그거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이사회 멤버인 론티 이버스 아만트재단 대표, 홍콩 억만장자 컬렉터인 에이드리언 청 뉴월드개발 부회장, 스위스 대표 컬렉터로 꼽히는 마야 호프만 루마재단 회장 등등, 세계 유수의 갤러리와 미술계 관계자들이 ‘전세기까지 띄워’ 속속 입국하고 있단 얘기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단군 이래 가장 많은 ‘그림장사’가 대한민국에 집결하는 중이다. ‘아트페어’라고 할 땐 엄밀히 미술작품을 사고파는 ‘큰 시장’을 말한다. 하지만 ‘장터’란 게 어디 그런가. 구경꾼이 더 신나는 법이다. 그 기대만큼 행사 안팎에는 명작을 내건 전시가 줄을 잇고, 하다못해 입국 ‘첫인상’인 인천공항까지 미술작품으로 꽃단장을 마쳤다.
|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연 위성전시. 키아프가 한국화랑협회와 함께 여는 특별전. 9월 25일까지 진행한다(사진=키아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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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전관에서 함께 개막하는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이 동원하는 국내외 갤러리는 350여개다. 21주년을 맞으며 몸집을 잔뜩 키운 ‘키아프 서울’은 6일까지 닷새간, 아시아 미술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교두보를 서울에 놓은 ‘프리즈 서울’은 5일까지 나흘간 그림장사를 벌인다.
‘공동개최’를 내세우지만 두 아트페어는 ‘한 지붕 두 가게’ 격이다. 어떤 비장의 무기를 내걸고 얼마나 컬렉터를 불러들이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무한경쟁에 놓여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혈전’ ‘총성 없는 전쟁’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일단 공간부터 갈랐다. ‘키아프 서울’은 코엑스 1층 A·B홀과 그랜드볼룸을, ‘프리즈 서울’은 3층 C·D홀을 쓴다. 다만 티켓을 단일화해 공동개최의 의미는 다져뒀다. 두 아트페어를 행사기간 내내 다 둘러볼 수 있는 관람권은 20만원(3일 오전 11시부터), 하루만 보는 관람권은 7만원(3일 오후 1시부터)이다.
| 김구림의 ‘음과 양’(2009·페어 중 하나). 가나아트가 ‘키아프 서울’에 내놓는 작품이다(사진=키아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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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는 한국 미술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세계에서 날아온 갤러리와 컬렉터가 한국미술과 한국작가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성장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 성공 여부에 따라 ‘1조원대 한국미술시장’을 안전하게 열어젖힐 수 있다. 지난해 한국미술시장이 폭발시킨 규모는 9157억원이다. 이를 의식한 듯 “지난해 대비 매출 3배 성장”이란 예측은 키아프에서 먼저 나왔다. ‘키아프 2021’에서 팔아낸 미술품이 650억원어치니 올해 2000억원대를 내다본 거다.
“프리즈에 묻힐 수도 있다”…김구림·이건용 등 ‘한국간판’ 내건 ‘키아프’의 승부수 ‘프리즈’가 서울 진출을 선언한 직후 한국 미술계는 둘로 갈렸다. 하나는 프리즈 덕에 한국미술의 진면목을 세계에 소개할 수 있다는 ‘희망파’, 다른 하나는 프리즈 탓에 한국미술이 그나마 다진 기반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파’. 비중은 우려 쪽에 더 실렸다. 국내 컬렉터조차 해외에서 들여온 번쩍이는 작품을 본다면 더 이상 국내 토종 화랑과 작가에만 집중할 수 없을 거란 판단에서다.
| 이건용의 신체드로잉 ‘바디스케이프 76-3-2022’(2022). 갤러리현대가 ‘키아프 서울’에 출품한다(사진=키아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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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무엇이 됐든 프리즈가 ‘모셔온’ 작가·작품에 맞불을 놓을 ‘키아프’의 실탄은 절대요소가 됐다. 17개국 164개 갤러리(해외 60여개)를 꾸려낸 ‘키아프’의 전략은 ‘한국간판 작가’다. 가나아트는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 김구림을, 갤러리현대와 리안갤러리는 한국 전위예술을 선도한 이건용을 선두에 세웠다. 국제갤러리는 유영국·이승조 등을, 학고재갤러리는 이봉상·류경채 등을 라인업으로 삼았다. 또 이화익갤러리는 김미영을, 웅갤러리는 장광범을 내건다. 해외 갤러리에서 출품하는 한국 작가들 면면도 만만치 않다. 보따리 연작으로 유명한 김수자는 악셀 베르포트 갤러리와 손 잡고 솔로전을 연다. 갤러리 바지위는 예술가 부부 이응노와 박인경, 아들 이융세까지 한꺼번에 조명한다.
| 유영국의 ‘워크’(Work·1962). 국제갤러리가 ‘키아프 서울’에 내건다. 국제갤러리는 단독 섹션으로 유영국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사진=국제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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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갤러리가 들인 유명작가 퍼레이드도 만만치 않다. 안네 모세리-말리오 갤러리는 2차대전 뒤 가장 저명한 일본예술가로 꼽히는 미노루 오노다를 내걸고, 탕컨템포러리갤러리는 중국의 거장 아이웨이웨이의 신작을, 크리스티아 로버츠 갤러리는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 신작을 들여온다. 갤러리 컨티누아는 세계적 조각가 아니시 카푸어와 안토니 곰리를, 페로탕갤러리는 베르나르 프리츠와 엠마 웹스터, 제인 딕슨 등을, 페레스프로젝트는 도나 후앙카와 레베카 애크로이드 등을 출품한다.
| 레베카 애크로이드의 ‘2022 STEM’(2022). 페레스프로젝트가 ‘키아프 서울’에 내놓는 작품 중 한 점이다(사진=페레스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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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프의 또 다른 전략은 올해 새롭게 론칭한 ‘키아프 플러스’다. 코엑스의 메인 장터와는 구분해 9월 1일부터 5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 대치동 세텍에 ‘키아프 플러스 2022’를 차린다. 11개국 73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키아프 플러스’에는 5년 이하 신생 화랑이나 젊은 작가의 작업을 위주로 NFT, 미디어아트 등을 중점적으로 꾸려낸다. 세계적 NFT 컬렉션인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 클럽’(BAYC)과 BAYC NFT의 저작권 활용을 통해 파생된 ‘지루한 원숭이들의 골프 클럽(BAGC 코리아) NFT’ 컬렉션이 개막 전부터 주목받고 있다.
| ‘지루한 원숭이들의 골프 클럽(BAGC 코리아) NFT’ 컬렉션에 나오는 작품 중 하나. 키아프가 올해 론칭해 띄우는 ‘키아프 플러스’에 출품한다. 9월 1일부터 5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 대치동 세텍에 연다(사진=키아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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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팔러 오지 않았다”…피카소·허스트 투하한 ‘프리즈’의 여유 ‘프리즈’의 시작은 3파운드짜리 미술잡지였다.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창간할 당시 준비호에 24세 ‘신진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폭발’(Explosion)을 싣고, 세계적으로 커 나갈 작가를 먼저 알아본 안목을 세상에 알리며 승승장구했더랬다. 그 기세를 몰아 프리즈가 아트페어에 눈을 돌린 것은 2003년. ‘프리즈 런던’과 ‘프리즈 스컬프처’를 시작하고 내친김에 미국으로 건너가 ‘프리즈 뉴욕’(2012)과 ‘프리즈 로스엔젤레스’(2019)까지 론칭했다. 그러면서 기어이 ‘세계 3대 아트페어’란 타이틀까지 따냈다. ‘프리즈 서울’은 프리즈가 세계로 진출한 다섯 번째 아트페어가 된다. 올해부터 5회 동안 서울에서 키아프와 가을 아트페어를 이어가게 된다.
| 프리즈가 지난해 펼친 ‘프리즈 마스터즈’ 전경. ‘프리즈 마스터즈’는 고대 거장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걸작을 세계 유수의 갤러리가 꺼내놓는 프리즈의 핵심 섹션이다(사진=프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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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프리즈 서울’이란 간판 아래 모이는 세계 유수의 갤러리는 21개국 110여개. 국내 12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해외 갤러리다. 무엇보다 그동안 국내 아트페어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세계 최고 갤러리들이 신작을 끌어안고 줄줄이 따라온다는 의의가 가장 크다. 이 중에는 미국의 가고시언이나 벨기에의 악셀 베르포트 외에도 데이비드 즈워너, 하우저앤드워스, 화이트큐브 등이 끼어 있다. 그간 프리즈의 매출 규모는 드러난 적이 없다. 그저 매회 1조원대 정도로 추산한다. 도이치뱅크나 BMW 같은, 등에 업은 명품 후원사가 그 규모의 힌트가 될 뿐이다.
‘프리즈 서울’의 구성은 크게 세 갈래. 주요 갤러리가 부스를 차려 참여하는 ‘메인 세션’, 고대 거장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걸작을 18개 갤러리가 꺼내놓는 ‘프리즈 마스터즈’, 아시아에서 2010년 이후 개관한 갤러리와 작가 10명을 소개하는 ‘포커스 아시아’다.
| 마리나 페레스 시망의 ‘무제’(2021). 페이스갤러리가 ‘프리즈 서울’에 출품했다(사진=프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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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기로 유명한 세계 최고의 가고시안갤러리는 데미안 허스트, 게오르그 바젤리츠, 무라카미 타카시, 쩡판즈 등 17명 작가로 화려한 라인업을 꾸렸다. 하우저앤드워스는 루이스 부르주아, 조지 콘도, 필립 거스통 등 거장급 작가 8명의 작품을 출품한다. 스테판 프리드먼 갤러리는 여성 그룹전을 열고 마마 앤더슨, 레일라 바비라이, 사라 볼, 리사 브라이스 등을, 마리안 이브라함 갤러리는 세계를 주목시킨 가나 작가 아모아코 보아포를,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는 캘빈 마커스를 동반했다.
판을 이렇게 키우고도 프리즈는 “우린 그림을 팔러 온 게 아니다”란 ‘가진 자의 여유’를 굳이 감추지 않는 중이다. 패트릭 리 프리즈 디렉터는 “그림장사는 프리즈의 목적이 아니다”라며 “많은 사람이 아트페어에서 영감을 받고 궁극적인 지향을 가진 큐레이터가 모이는 장소가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 프랜시스 베이컨의 ‘교황을 위한 습작Ⅰ’(1961).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프리즈·키아프 서울에 맞춰 9월 3~5일 서울 분더샵 청담에 여는 특별전에 나온다(사진=크리스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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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은 안 되도 ‘눈’은 된다…놓치면 후회할 ‘프리즈 마스터즈’ 그런 프리즈의 목적과 지향이 굳이 비딱하게 보이지 않는 건, 바로 이 섹션 덕이다. 말 그대로 박물관을 옮겨온 듯한, 근현대의 미술사이자 혁신인 걸작을 모은 ‘프리즈 마스터즈’ 말이다. 이번에도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피에트 몬드리안, 장 미셸 바스키아, 로이 리히텐슈타인, 데이비드 호크니 등이 18개 갤러리에 나뉘어 한자리에 모인다.
|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프로필 헤드’(1988). 카스텔리갤러리가 ‘프리즈 마스터즈’에 내걸 작품이다(사진=카스텔리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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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콰벨라갤러리즈는 1921년 설립한 100년 저력을 내세워 피카소와 몬드리안을 필두로 앤디 워홀, 프랜시스 베이컨, 알베르토 자코메티, 키스 해링, 윌리엄 드 쿠닝,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의 작품을 대거 들여왔다. 또 카스텔리갤러리는 리히텐슈타인을, 앤리 주다 파인아트는 호크니를 첫줄에 세웠다. 도쿄갤러리는 국내 단색화 작가들과의 교류를 드러내는 기획전을 꾸민다. 김창열·김환기·이동엽·이강소·박서보·윤형근 등을 해외 갤러리에서 보는 특별한 경험이다.
몇몇 한국 갤러리도 ‘프리즈 마스터즈’에 이름을 올렸다. 갤러리현대는 곽인식·이승택·박현기 등으로 20세기 한국 아방가르드미술을 회고하고, 학고재갤러리는 백남준·윤석남 등으로 21세기 한국 현대미술의 의미를 더듬는다. 또한 ‘프리즈 서울’에 부스를 차리는 국제갤러리는 김환기의 푸른 전면점화를 내놓으며 한국미술의 자존심을 대신 건다.
| 김환기의 ‘고요 5-Ⅳ-73 #310’(1973). 국제갤러리가 ‘프리즈 서울’에 출품한다(사진=국제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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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준의 ‘로봇(라디오 맨, 요셉 보이스)’(1987). 학고재갤러리가 ‘프리즈 마스터즈’에 세울 작품이다(사진=학고재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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