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터로 클래식카 복원..비틀 로드스터 탄생

  • 등록 2018-11-05 오전 9:41:00

    수정 2018-11-05 오전 9:41:00

[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이경섭 기자= '메뉴팩처'란 독일어로 마누팍투어(Manufaktur), 즉 수제작(hand made)이라는 뜻이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주로 공장제 수공업형태 생산방식을 지칭하기도 했다. 대량생산 시대를 지나 4차 산업혁명시대 초입인 지금, 독일에선 매뉴팩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매뉴팩처 생산, 대체 어떠한 관계일까?

올해 새로 선보인 자동차 모델 ETA 02 카브리오(Everytime Automobile 02 Cabrio)와 메밍어 로드스터(Memminger Raodster 2.7), 두 모델 모두 대량생산 회사가 아닌 수공업 정도 규모의 아주 작은 소규모 독일 회사에서 손수 제작한 모델이다.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브랜드다. 하지만 이 모델들을 잘 보면 어딘가 익숙하다.

폴크스바겐 비틀이 원형인 메밍어 로드스터

메밍어 로드스터의 원형은 폴크스바겐 비틀이다. 이 1세대 오리지널 비틀을 독일서는 캐퍼(Kaefer, 딱정벌레)라고 한다. 그러나 98년도에 나온 비틀 2세대는 캐퍼라고 하지 않고 주로 ‘뉴비틀’로 불린다. 왠지 익숙했던 것은 바로 메밍어 로드스터 차체의 전체적인 디자인 형태가 비틀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슷해 보인다는 편견은 디테일에서 전혀 다름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독창성을 강조한다. 닮음에도 위계질서를 느낄 수 있다면 유사함이라든가 비슷함이 아니라 상사(相似)가 되고, 존경이나 경의가 담겨진 닮음이라면 오마주(Hommage)가 된다. 메밍어 로드스터 2.7은 단종된 비틀에 대한 오마주다.

메밍어 로드스터 제작자인 게오르그 메밍어(Georg Memminger)는 원래 독일 바이에른주의 잉골슈타트(Ingolstadt) 근처 시골의 조그만 철강회사 사장이었다. 이 철강회사는 뮌헨 올림픽경기장 철골구조 건설에도 참여했을 정도로 아주 견실한 중소기업이다. 1980년대에는 어릴 적 꿈이었던 자동차레이서로 데뷔해 프랑스의 유명한 자동차 장거리 경주대회인 르망24 대회에서 13위에 오르기도 했다. 각종 자동차 장거리 경주 전문 레이서로 활동했다.

게오르그는 자동차 레이서로서는 그리 큰 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그러한 경험은 나중에 비틀에 대한 복원사업에 매우 귀중한 자산이 됐다고 회고한다. 1998년 친구와 함께 우연히 폴크스바겐 오리지널 비틀 복원작업을 시작하다 비틀에 흠뻑 빠져 지금은 철강회사와 더불어 비틀 전문 복원회사로 더 유명해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세대 비틀은 1938년 독일 히틀러 시대부터 생산돼 2003년 멕시코 공장에서 단종 될 때 까지 무려 65년 동안 2000만대이상 판매된 전설적인 기록을 지닌 역사적인 모델이다.

올해는 비틀이 세상에 나온 지 80년 째다. 게오르그는 아들 소르쉬(Schorsch)와 무려 5년 이상 머리를 맞대고 개발해 비틀 80주년 특별 모델을 제작했다.

아버지의 꿈에 아들이 기꺼이 동참했고 결국 메밍어 로드스터 2.7이 탄생됐다. 메밍어 로드스터 개발에는 부자지간의 협력으로 무려 5년 이상 걸렸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평소 간직한 비틀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기술적으로 더욱 스포티함을 느낄 수 있게 기술과 디자인을 재현하는 것이었다고......

물론 메밍어 로드스터의 전체 디자인은 떠오르는 젊은 디자이너인 필립 에베를(Phiplipp Eberl)이 맡았는데 의뢰자인 메밍어 부자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디자인을 완성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필요했다고 한다.

엄밀히 말해서 메밍어 로드스터는 비틀의 유전자를 지녔지만 비틀의 복원품 혹은 복제품이 아닌 완전히 독립적인 모델이다. 비틀을 제작했던 글로벌 대기업 폴크스바겐 조차도 하지 못한 독일식 정통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찬란한 결과이자 업적이다.

ETA 02 카브리오

ETA 02 카브리오 수제작 자동차 모델도 역시 독일 ‘부자유친’의 결과물이다. 아버지 하랄드캐스(Harald Kaes)와 아들 미솨엘 캐스(Michael Kaes)가 협력해 제작한 모델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설립한 Every Time Automobile GmbH란 유한회사에서 제작해 모델이름이 회사 약자인 ETA이다. 메밍어와 마찬가지로 ETA도 1968년부터 1971년까지 생산됐던 BMW 1600 카브리올레가 원형이다. BMW 1602 차체를 오마주(Hommage)해서 전체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BMW 1600는 모델시리즈 114로 카브리올레 2도어였고 따라서 4도어와 구별하기 위해 1600-02 혹은 BMW-02모델로도 불리며 1977년까지 생산됐던 최고 인기 차종이었다. 1971년부터는 이 모델을 공식적으로 1602로 불렀다. ETA 02의 02는 바로 1602의 02에서 따왔다.

2차 대전이후에 등장한 신형(Neue Klasse) 4도어 세단 모델인 BMW 115, 116, 118, 120, 121 등은 각각의 엔진 배기량에 따라 구분된다. 이 등급을 신형이라고 부른 것은 이전엔 소형인 이제타(Isetta) 혹은 BMW 700모델과 ‘바로크의 천사(Baroque Angels)’란 별명의 대형 BMW 501/502모델 사이에 적절한 중형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1602모델이 계승돤 것이 오늘날 BMW 3시리즈다.

메밍어부자(父子)와 마찬가지로 부자(富者)였던 캐스 부자(父子)도 단순한 클래식모델의 복원을 넘어 새로운 모델로 개발하는 열정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독일 부자(父子)들은 단순히 클래식자동차 복원을 넘어 레트로 모던 클래식자동차 모델을 개발해 자동차의 또 다른 시장을 확장해 나가는 선구자들이다. 동시에 매뉴팩처 자동차의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이 자동차를 전부 개발한 것은 아니다. ETA는 3D 디지털화 작업 및 실내외 디자인 그리고 동역학분석 및 CAD 개발 등 모두 각각 해당 전문회사들과 수년 동안 동등한 조건에서 진행했다. 이 점은 메밍어 로드스터도 마찬가지다.

메밍어 로드스터의 외부디자인은 신예 디자이너 필립 에베를(Philipp Eberl)과 함께 오랜 기간 고민 끝에 완성한 모델이다. 이들은 수직적 계약 관계가 아닌 수평적이고 지속적인 협동 관계 속에서 열정을 잃지 않고 이 두 부자(父子)들이 원하는 결과를 창출해냈다.

이러한 매뉴팩처 자동차의 새로운 르네상스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이 모델들이 3D 프린팅을 위한 3D 디지털화 작업을 통해 제작됐다는 점이다.

중세 14세기에 르네상스를 일으킨 가장 핵심 기술이 바로 인쇄술의 발달이었듯 4차 산업혁명의 본격적인 시작도 3차원 인쇄술 즉 3D 프린팅 생산기술의 현실화(3D 스캐닝 및 데이터 디지털화작업)에 그 기본바탕이 깔려 있다.

두 모델은 미리 만들어 놓고 판매하는 게 아니다. 모두 예외없이 주문 제작이 기본이다. 유일한 다른 점이 있다면, 메밍어로드스터가 주말이나 휴일의 드라이빙을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라면 ETA 2인승 카브리올레는 이름 그대로 어느 때나 탈 수 있는 승용차라는 점이다.

두 모델은 현대의 독일식 부자유친의 결과로 탄생한 자동차라는 것과 100% 주문제작 판매라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가업을 잇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독일에서는 흔한 일이다. 수제작 자동차라는 점은 기존의 개념과 다르지 않지만 노련한 명장의 손끝뿐만 아니라 3D 디지털화 작업과 첨단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초정밀가공으로 제작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원래 옛부터 아버지와 아들은 친하기 어려웠다. 오죽하면 유럽에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독일어, Oedipuskomplex)라는 말까지 나왔고 우리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고 굳이 가르쳐야만 했을까. 하지만 이젠 시대가 변했다.

독일의 아버지와 아들들이 수 년동안 함께 공을 들여 21세기 핸드메이드의 새로운 르네상스시대를 활짝 열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시 신화속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이러한 핸드메이드 전통(독일에선 명장의 대를 잇는 가족기업)을 이어 각 개인의 ‘맞춤’에 대한 ‘대량화’로 향해 전진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미구에 다가올 4차 산업시대 자동차시장의 판도와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물론 대기업이 지향하고 나아 갈 방향도 따로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독일의 아버지와 아들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조화를 이뤄야 가능한 것이 바로 ‘맞춤의 대량화’다. 수직화 혹은 계열화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종속을 가속화 하던 권위의 3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이제는 모든 게 고객의 개성과 조화(Harmony)를 이뤄내야 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다. 이런 흐름에 맞춰 선발대로 다시 돌아온 신(新)매뉴팩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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