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덕 센터장, 생전 "내일은 몇 개의 몸과 머리가 필요할까?"

긴 연휴에 "응급의료는 그것만으로도 재난"
이국종 '골든아워'에서 "출세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
  • 등록 2019-02-07 오전 9:51:22

    수정 2019-02-07 오후 1:08:47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오늘은 몸이 3개, 머리가 2개였어야 했다. 내일은 몇 개 필요할까?”

설 연휴 근무 중 돌연 사망한 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지난 2017년 9월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같은 해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고 개천절, 추석이 이어지자 그는 “연휴가 열흘! 응급의료는 그것만으로도 재난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6일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윤 센터장은 4일 오후 6시께 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 사무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윤 센터장의 부인은 설 당일(5일) 전날에도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자 병원을 찾았고, 직원들과 함께 센터장실에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센터장의 가족은 그가 평상시에도 응급상황 때문에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잦아 연락이 끊긴 지난 주말에도 업무로 바쁘다고 여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02년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의 응급의료기획팀장으로 합류하면서 연휴를 즐길 새 없이 환자를 돌본 것은 물론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헌신해왔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과 함께 나와 응급의료 헬기인 ‘닥터헬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모습(사진=SBS 뉴스 캡처)
실제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국가 재난 의료체계 문제 등 응급의료 관련 논의·운영 현장엔 늘 그가 있었다.

윤 센터장은 2017년 7월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열린 ‘응급의료기금, 제대로 쓰이고 있나’ 토론회에 참석해 “국가는 국민에게 ‘안심하고 의식을 잃을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 그 대표적 수단이 응급의료기금”이라고 역설하며 거꾸로 가고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또 지난해 12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중증 응급환자 사망을 줄이기 위한 응급의료체계 리폼 토론회’에서는 “응급의료 문제가 나아질지 생각하면 참담하다. 고령화로 요양병원 증가, 응급실 환자 증가, 진료과 세분화, 근로시간 단축 등 병원 운영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 의료환경을 환기시켰다.

그는 “시설과 장비, 인력 말고 병원별 역량에 맞는 별도 권역센터 기준이 필요하다. 내가 병원장이라도 의사 1명이 응급실 밤샘 진료로 환자 2명을 보는 것보다 외래 환자 200명을 진료하는 것을 택하겠다. 중증 응급환자 진료 수가를 개선하면 병원들이 적극 임할 것”이라며 과감한 지원을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마지막이 되어버린 그의 페이스북 글도 권역외상센터 관련 내용이었으며, 최근엔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논란에 대해 장문의 글을 남기는 등 그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도 응급환자를 위한 의료체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최근엔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펴낸 책 ‘골든아워’를 통해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 교수는 책의 한 부분을 ‘윤한덕’이라고 제목을 붙여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왔다. 그가 보건복지부 내에서 응급의료만을 전담해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정부 내에서는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윤 센터장의 별세 소식에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위해 7일 부검을 진행하기로 했다.

윤 센터장의 장례는 국립중앙의료원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영결식과 장례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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