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웅의 블토경]암호화폐가 원활하게 거래되려면

  • 등록 2019-01-19 오전 11:05:00

    수정 2019-01-19 오전 11:05:00



암호화폐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고 정부 규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 토큰 이코노미를 접목시킨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생태계와 그 생태계가 작동하게 만드는 토큰 이코노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길잡이가 절실합니다. 이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해외송금 프로젝트인 레밋(Remiit)을 이끌고 있는 정재웅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수석 토큰 이코노미스트가 들려주는 칼럼 ‘블(록체인)토(큰)경(제)’을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정재웅 레밋 CFO] 금융자산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사실 우리가 금융시장에서 목격하는 금융자산의 가격은 시장에서 사람들의 기대심리와 이에 기반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 예를 들어 반도체 교체 주기로 인해 삼성전자 반도체 실적이 악화되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어떤 투자자는 삼성전자 반도체 실적이 악화되었기에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 예상하는 반면, 다른 어떤 투자자는 반도체 교체 주기는 돌고 돌기에 지금 싼 가격에 사면 나중에 다시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 예상한다. 이 경우 하락을 예상하는 투자자는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하고, 다시 상승을 예상하는 투자자는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한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기대로 인해 시장에서는 가격이 형성되고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시장, 특히 금융시장에서의 가격 형성 과정을 Milgrom과 Stokey는 그들의 1982년 논문인 “Information, trade, and common knowledge”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시장에서 사람들이 금융자산을 거래하고, 이를 통해 가격이 형성될 수 있는 까닭은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각각 모두 서로 다른 정보, 기대, 믿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장에서 모든 참여자가 동일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동일한 정보는 사람들이 같은 혹은 유사한 판단을 하게 만들 것이고, 그렇기에 시장에서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동일한 기대와 믿음 역시 마찬가지다. 즉 시장에서 매도와 매수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것은 결국 시장 참여자가 모두 다른 정보, 기대, 믿음을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모두 같은 정보, 기대, 믿음을 가졌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앞으로 힌국 경제가 장기간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를 시장 참여자가 모두 알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정보로 인해 시장 참여자들은 모두 앞다투어 금융자산을 판매하려 할 것이고, 그 결과 시장에서는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고, 더 나아가 시장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좀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하기는 했지만, 이는 사실이고, 그렇기에 시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장 참여자가 다른 정보와 다른 기대를 가져야 한다. 시장 참여자의 대다수가 긍정적인 정보와 기대를 갖고 의사결정을 하면 그 시장은 과열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시장이 무너진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자산의 가격결정모형이 중요해진다. 설령 그 가격이 완전히 옳지 않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기준점이자 벤치마크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식의 가격을 결정하는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ital Asset Pricing Model, CAPM)은 개별 주식의 자산을 시장 포트폴리오와 베타를 이용해 결정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하나의 기준을 제시한다. 블랙-숄즈-머튼 옵션가격결정모형(Black-Scholes-Merton Option Pricing Model)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모형이 과연 옵션의 가격을 적절하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금융자산의 가격을 명확하게 설정함으로써 투자자들이 가치를 평가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이와 같은 금융시장에서의 가격에 중요하게 전제되는 것은 보편지식 혹은 공통지식(Common Knowledge)다. 예를 들어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 주가가 상승하고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주가가 하락하는 것은 개별 주식 혹은 시장의 전망과 상관없이 시장 참여자 모두가 사전적으로 아는 보편 지식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보편 지식을 전제하여 시장 참여자는 각각 자신들이 가진 정보와 이에 기초한 기대를 갖고 시장에 참여한다. 보편 지식을 갖고 있지만 각각 정보와 기대가 상이하기에 시장에서는 거래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가격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암호화폐 시장은 어떨까? 지난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의 버블 혹은 2018년 하반기의 침체로 미루어 판단하면 아직 보편지식조차 형성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암호화폐가 실제 법정화폐를 대체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여러 금융 자산 중 하나의 대체 자산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조차 시장 참여자의 합의를 거친 보편지식이 되지 못한 상황이다. 심지어 가격 상승과 하락이 어떤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는지조차 시장 참여자는 알지 못한다. 단지 막연한 기대에 의해서 가격이 상승하고 역시 마찬가지로 막연한 패닉에 의해서 가격이 하락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장에서 원활한 거래도 힘들고, 설령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가격의 발견이 어렵다.

암호화폐와 암호화폐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금융시장에 있어 하나의 대체투자 시장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 참여자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보편지식과 이에 기반하여 서로 다른 정보와 기대를 통해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암호화폐 시장이 막연한 낙관과 패닉에 의해 가격이 급등락하는 시장이 아니라 정보와 기대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제대로 작동하는 금융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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