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춤추자, 청소년도 어른도 죽고 싶지 않으니

국립극단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
류장현 안무·연출, 올해 세 번째 무대
몸짓으로 풀어내는 청소년의 고민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재미 더해
  • 등록 2019-09-03 오전 6:00:00

    수정 2019-09-03 오전 6:00:00

국립극단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가 칠판으로 변신했다. 무대 양옆과 뒤편, 그리고 바닥까지 4면이 분필로 쓴 글씨들로 빼곡하다. 유독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새겨지고 싶어.” 아이도 어른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청소년의 작지만 힘 있는 외침이다.

교실을 옮겨놓은 듯한 이곳에서 지난 8월 22일부터 ‘죽고 싶지 않아’가 공연 중이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제작한 청소년극 대표작으로 안무가 류장현이 안무와 연출을 맡았다. 2016년 열흘간의 짧은 초연 이후 앙코르 요청이 쇄도해 지난해 재공연에 올랐다. 올해 세 번째 공연은 울주와 천안 등 지방에서 먼저 선보인 뒤 서울에서 관객과 다시 만나고 있다.

‘청소년극’이지만 청소년만 보는 연극은 아니다. 무용과 연극이 결합된 ‘댄스 씨어터’로 성인 관객과도 공감대를 형성한다. 류 안무가는 2015년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청소년예술가탐색전’을 통해 만난 청소년들과의 창작실험에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 공부·친구·사랑·우정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 청소년기에 누구나 갖게 되는 고민을 춤으로 풀어낸다.

청소년기를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청소년의 마음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죽고 싶지 않아’의 첫 인상도 좀처럼 예상하기 힘든 강렬함에 있다. 극이 시작하면 11명의 무용수·배우들은 문과 벽에서 한명씩 튀어나온다. 라데츠키 행진곡에 맞춰 양팔을 흔들고 무대를 좌우사방으로 뛰어다니며 펼치는 몸짓은 객석에 강한 흥분과 에너지를 전한다.

“인간과 초파리의 유전자는 5분의 3이 같다.” 극 초반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왜 불안과 혼란을 겪는지를 과학적인 지식으로 전한다. 초파리에게는 없는 인간의 유전자가 이족보행으로 손을 자유롭게 했다는 것, 그리고 뇌의 전두엽은 청소년기가 되면 어른이 될 준비를 위해 절반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이야기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지만 그 속에는 잊고 지냈던 청소년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죽고 싶지 않아’가 초연 이후에도 꾸준히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관객 참여형 공연이라는 점에 있다. 극 중반 무용수·배우들이 객석에 깜짝 등장해 관객들을 무대로 이끈다. 올해는 저승사자 복장에 묘비 모양의 소도구를 들고 나타나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청소년의 고민이 유쾌하게 담겨 있다. 록 밴드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강렬한 록 음악에 맞춰 무용수·배우들이 관객과 함께 춤추는 장면은 ‘죽고 싶지 않아’의 명장면 중 하나다.

물론 유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청소년 시절엔 누구나 희희낙락 웃다가도 작은 일로 싸우기 마련. 한없이 흥겹던 몸짓은 이내 폭력을 연상시키는 거친 몸싸움이 된다. 아이도 어른도 아니기에 어디에도 발 딛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에게 죽음은 삶만큼 가까울 수 있음을 극 후반부가 보여준다. 그럼에도 작품은 제목처럼 “죽고 싶지 않아”야 한다고 외친다. 글로리아 게이너의 히트곡 ‘아이 윌 서바이브’와 함께 무대 위에서 무용수 홀로 펼치는 춤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생의 의지를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죽고 싶지 않아’를 놓쳐서 안 되는 이유는 공연이 모두 끝난 뒤 펼쳐지는 커튼콜에 있다. 이 순간 무대는 객석과의 경계가 희미해진 흥겨운 ‘춤판’이 된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배우·무용수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분위기에 취한 나머지 무대 위에서 정신없이 춤추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류 안무가는 프로그램북을 통해 “‘죽고 싶지 않아’는 의도치 않아도 청소년기의 나를 돌아볼 수밖에 없고 죽음을 돌아볼 수밖에 없게 된다”며 “이 작품은 나 자신과 나를 포함하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거울을 비추는 그런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올해는 2018년 공연을 함께 한 손지미·송재윤 외에 김난수·김지수·박상하·배재완·성안영·오진민·진여준·윤일식·최세윤 등 9명의 배우와 무용수가 등장해 지난해 공연과 다른 신선함을 전한다. 공연은 9월 8일까지.

국립극단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 청소년극 ‘죽고 싶지 않아’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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