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식 한국신용카드학회장(상명대 경영학부 교수)] 자연의 생태계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의 유효성과 생존을 위해 상호 연결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카드사, 가맹점, 회원, 밴사, 정부 등은 느슨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내에서 상호의존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상대방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복잡한 관계를 통해 카드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카드생태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용이 필요하다. 결국 가맹점 수수료 갈등의 본질은 카드생태계를 가동하기 위한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2012년부터 새로운 가맹점 수수료율 체계로 개편되면서 정부 주도로 영세 중소가맹점에 대해서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서민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영세 중소 상인의 부담을 더는 등 소상공인을 배려하는 취지였다. 그 이후 연 매출 3억원 미만의 가맹점 수수료율은 0.8%, 3억~5억원은 1.3%로 인하했고 다시 지난해 11월 연 매출 30억원 가맹점으로 확대해 하향 조정했다. 또한 3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가맹점과 100억원에서 500억원 미만의 일반 가맹점도 각각 1.90%, 1.95%로 낮췄다. 새 수수료율 도입으로 전국 269만 개의 가맹점 중 96%가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게 된 셈이다. 이러한 카드수수료 개편으로 신용카드 8개사의 가맹점 수수료 수익 감소 규모는 연간 8000억원 이상으로 2018년 전체 영업이익의 35%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에도 최저임금 인상,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돕는다며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수수료 인하로 인해 발생한 카드사의 손실분을 카드생태계에서 누가 얼마만큼 부담할 것인가의 이슈가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카드사들과 현대자동차의 수수료율 조정 갈등은 이러한 이슈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카드사들은 매출이 큰 대형 가맹점의 카드수수료율이 최소한 일반 가맹점보다는 높아야 한다는 취지인 ‘역진성 해소’의 명분으로 수수료율 인상을 주장했지만 대형가맹점들은 ‘박리다매의 평범한 시장 원리’를 내세워 카드사의 손실분 보전책임에 싸늘한 거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가격설정에는 원가중심, 구매자중심, 경쟁자중심 등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정부는 처음부터 제조업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원가중심 가격체계를 대표적 서비스업종인 신용카드에 적용했다. 이 때문에 매출이 큰 대형 가맹점의 카드수수료율이 최소한 일반 가맹점보다는 높아야 한다는 취지는 더 많이 사면 더 많이 할인받을 수 있다는 ‘평범한 시장 원리’에 전면 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격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가격결정과정에서 수익성이나 원가 측면뿐만 아니라 형평성과 사회목적 측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다만 가맹점수수료 체계는 신용카드의 양방향성 시장특성 때문에 가격결정이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가격은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서 균형점을 이룰 때 결정되지만 양방향 시장에서는 이러한 가격결정 구조가 적용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가격결정의 기본적 속성 때문에 당면하고 있는 가맹점 수수료 체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카드수수료 체계에 대해서 논리의 반대경향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 카드생태계에서 정부의 입장은 심판이며 조정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