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카드가맹점 수수료 개편에 뒷짐진 정부

  • 등록 2019-04-09 오전 6:00:00

    수정 2019-04-09 오전 6:00:00



[이명식 한국신용카드학회장(상명대 경영학부 교수)] 자연의 생태계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의 유효성과 생존을 위해 상호 연결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카드사, 가맹점, 회원, 밴사, 정부 등은 느슨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내에서 상호의존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상대방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복잡한 관계를 통해 카드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카드생태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용이 필요하다. 결국 가맹점 수수료 갈등의 본질은 카드생태계를 가동하기 위한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2012년부터 새로운 가맹점 수수료율 체계로 개편되면서 정부 주도로 영세 중소가맹점에 대해서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서민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영세 중소 상인의 부담을 더는 등 소상공인을 배려하는 취지였다. 그 이후 연 매출 3억원 미만의 가맹점 수수료율은 0.8%, 3억~5억원은 1.3%로 인하했고 다시 지난해 11월 연 매출 30억원 가맹점으로 확대해 하향 조정했다. 또한 3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가맹점과 100억원에서 500억원 미만의 일반 가맹점도 각각 1.90%, 1.95%로 낮췄다. 새 수수료율 도입으로 전국 269만 개의 가맹점 중 96%가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게 된 셈이다. 이러한 카드수수료 개편으로 신용카드 8개사의 가맹점 수수료 수익 감소 규모는 연간 8000억원 이상으로 2018년 전체 영업이익의 35%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에도 최저임금 인상,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돕는다며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실상을 살펴보면 신용카드매출에 따른 가맹점의 손실 구조는 상이하게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재 세법상 신용카드발행세액 공제율이 1.3%로 이미 연매출 5억원 이하 자영업자는 0.8~1.3%의 낮은 우대수수료율과 카드결제로 인한 부가가치세 매출세액 공제를 따로 받아 카드 매출로 인해 손해는 보전되고 오히려 이익까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개편안의 주요 수혜자는 연매출 5억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자영업자로 분석된다. 수수료 개편의 실상이 이렇다 보니 영세 중소 상인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과 범위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수수료 인하로 인해 발생한 카드사의 손실분을 카드생태계에서 누가 얼마만큼 부담할 것인가의 이슈가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카드사들과 현대자동차의 수수료율 조정 갈등은 이러한 이슈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카드사들은 매출이 큰 대형 가맹점의 카드수수료율이 최소한 일반 가맹점보다는 높아야 한다는 취지인 ‘역진성 해소’의 명분으로 수수료율 인상을 주장했지만 대형가맹점들은 ‘박리다매의 평범한 시장 원리’를 내세워 카드사의 손실분 보전책임에 싸늘한 거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사실 전체 카드 사용액의 66%가 대형 가맹점에서 나오는 만큼 이러한 기류는 카드사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혜택이 줄면 소비자들이 느끼는 충격도 클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중적인 기준을 내세우고 있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한층 거세지고 있다. 지금까지 영세·중소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는 강제로 개입하고 있지만 대형가맹점과의 사태에는 ‘시장 자율’이라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 혼란과 오해가 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목에서 조정자 내지 심판의 역할보다는 그동안 직접 시장에 개입해 플레이어로서의 역할을 해온 정부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신용카드산업에서 시장실패는 물론 궁극적으로 정책실패까지 연결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격설정에는 원가중심, 구매자중심, 경쟁자중심 등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정부는 처음부터 제조업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원가중심 가격체계를 대표적 서비스업종인 신용카드에 적용했다. 이 때문에 매출이 큰 대형 가맹점의 카드수수료율이 최소한 일반 가맹점보다는 높아야 한다는 취지는 더 많이 사면 더 많이 할인받을 수 있다는 ‘평범한 시장 원리’에 전면 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격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가격결정과정에서 수익성이나 원가 측면뿐만 아니라 형평성과 사회목적 측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다만 가맹점수수료 체계는 신용카드의 양방향성 시장특성 때문에 가격결정이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가격은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서 균형점을 이룰 때 결정되지만 양방향 시장에서는 이러한 가격결정 구조가 적용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가격결정의 기본적 속성 때문에 당면하고 있는 가맹점 수수료 체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카드수수료 체계에 대해서 논리의 반대경향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 카드생태계에서 정부의 입장은 심판이며 조정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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