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글이란 뜻을 드러내면 그만일 뿐이다. 제목을 앞에 두고 붓을 들 때마다 옛말을 떠올린다거나 애써 경전의 뜻을 빌려 와 글자마다 무게를 잡는 자는… 평상시 모습을 잃어버리니 그 참됨을 얻기는 어렵다”(연암 ‘공작관문고 자서’).
누구나 글을 쓸 줄은 안다. ‘잘 쓰고’ ‘잘 쓰지 못하고’가 있을 뿐. 유행도 있다. 한때 유독 잘 읽히는 글이 있다. 그럼에도 시대를 관통하는 글쓰기가 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처럼. 그의 글은 “가벼운듯 진지하고 통쾌하지만 슬프고 능글맞되 삼엄하다.”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는 저자가 조선의 대문호,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연암의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파헤쳤다. ‘열하일기’ ‘호질’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넌 기록’ 등의 저작에서 뽑아낸 분석과 이해다. 무엇보다 저자는 연암에겐 일종의 글쓰기 ‘전략’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싸워 이기기 위한 병법이란 것이다. 실제 연암은 ‘문단의 붉은 기에 쓴 머리말’에서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했다. “글자는 군사고, 글의 뜻은 장수다. 제목은 적국이고 고사를 끌어들이는 것은 싸움의 보루다. 글자를 묶어 구절을 만들고 구절을 모아 문장을 이루는 일은 대오를 이루어 진을 치는 것과 같다.”
전략만이 아니다. 과정도 있다. 관찰하고 교감하고 자료를 모으고 제목을 정하고 협력하고 수정하는 단계다. 연암이 평생에 걸쳐 진부함을 꺼리고 상투적인 모방에서 벗어나려 했던 노력이 이 과정과 맞물렸다는 얘기다. 핵심은 저자가 이름 붙인 ‘생태 글쓰기’. 자연 사물에서 영감을 받은 데 연암 글쓰기의 본질이 있다는 생각이다. 궁극적으로 이 생태 글쓰기가 오늘날 도구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글쓰기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연암의 글엔 중세와 근대, 탈근대가 섞여 있다는 평도 내놨다. ‘그때’의 구조에 매이면서도 구조를 성찰하고 구조의 너머를 바라본다는 거다. 사실 연암의 관심사는 ‘지금 이곳’이었다. 모두가 ‘그때 저기’를 향할 때 ‘지금 이곳’이 제대로 돌아가는가를 물었다. 저자가 연암의 가치를 발견한 지점도 바로 여기다. 창작활동을 이룬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 ‘고심’과 ‘인문정신’이었단 것. 또 이것이 지금껏 유효하다는 거다.
연암의 글쓰기를 흠모한 건 비단 어느 한 시대가 아닌가 보다. 19세기 문장가인 항해 홍길주를 비롯해 대한제국기 문장가 창강 김택영, 운양 김윤식까지 ‘연암의 문장에 완전히 매료됐다’는 고백이 절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