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사건 현장을 지나던 사람이 있었다. 여성의 비명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중년 남성이 흰 천에 뭔가를 돌돌 말고 있었다고 했다. 30cm 정도 되는 막대 같았다. 남성이 자신을 계속 바라보다가 일행을 발견하고 달아났다고 했다. 이후 남자의 행방은 묘연했다.
미제로 분류된 이 사건은 검찰의 DNA 대조 작업을 통해 실마리가 풀렸다. 현장에서 발견된 장미 담배 2개비 가운데 한 개는 살해당한 여성의 타액이 묻어 있었고, 다른 하나에서는 신원 미상 남성의 타액이 검출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결과, 2012년 9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남성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2009년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권모(53)씨다.
그러나 권씨의 혐의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다. 진범이 권씨의 타액을 묻힌 담배를 사건 현장에 두고 달아났을 수도 있다. 권씨를 현장에서 봤다는 목격자의 진술도 범행과 직접 연관 짓기에는 연결 고리가 부족했다. 권씨가 사건 당일 만월산에 등산을 갔다고 해서 그를 범인이라 지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인 의심이 간다’는 이유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 1심은 권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마른 상태로 발견된 담배 2개비에 주목했다. 당일 만월산는 밤새 이슬이 내렸다. 담배 2개비가 밤새 산에 있었다면 젖어 있어야 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권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에서 피고인의 DNA가 발견된 점 등에 비춰 피고인과 피해자가 범행 당일 만났고, 그때 담배가 버려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목격자가 당시 본 사람은 피고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칼집에 사용된 종이가 피고인의 딸 다이어리 속지인 점 등을 보면 피고인이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소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