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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스티븐 로치는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 여러 글로벌 은행이 제재를 위반했고 엄청난 벌금을 물었지만 어느 누구도 감옥에 가지는 않았다”며 “왜 화웨이만 감옥에 갔냐”고 반문했다.
이렇게 시작한 화웨이와 미국간 갈등은 이제 중국 정부가 전 세계 통신망에 공급한 화웨이 제품을 통해 전산시스템을 해킹을 할 수 있다는 안보 문제로까지 발전했다. 미국은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를 동맹국들에 촉구했다. 이에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등이 화웨이 제품 퇴출을 검토 중이다. 일본도 동참했다.
미국은 왜 화웨이를 표적으로 삼았을까. 미국과 화웨이의 악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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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華爲). ‘중화민족을 위해 분투한다’는 뜻이다. 화웨이는 대표적인 ‘중국몽’(中國夢) 기업이다. 화웨이는 현재는 세계 통신장비업체 시장의 1위일 뿐만 아니라 기술분야에서도 주요기업들을 선도하고 있다. 모방으로 성장한 기업답지 않게 화웨이는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7년만 130억달러(14조 6948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했다.
올해 10월 화웨이는 전 세계 처음으로 인공지능(AI)를 통해 딥러닝이 가능한 칩을 발표했다. 5세대(5G) 통신 분야에서도 화웨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화웨이는 세계 66개국 150여개사 이상과 실증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ZTE도 네덜란드 통신 KPN과 5G 실증실험을 개시한 상태이다. 샤오미·화웨이·ZTE는 모두 내년 중 5G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 출시를 예고한 상태다.
지금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회사지만 시작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 세계시장에 등장한 초기만 해도 표절기업으로 악명을 떨쳤다.
2002년 화웨이는 라우터 시장에서 경쟁하던 미국기업 시스코 시스템에 특허침해로 기소됐다. 제품설명서까지 복사해 시스콤과 거의 유사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전략으로 거래처를 잠식했다.
실제 통신업계 후발전자였던 화웨이의 초기 전략은 선진기업에 대한 철저한 모방이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은 “모방으로 성장하다 경쟁사의 위기를 기회로 낚아채라”라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2014년에는 화웨이 엔지니어 2명이 시애틀에 있는 T모바일 연구소에서 주요기술 정보와 휴대전화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한 장비를 훔쳐가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화웨이의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2011년 미 국방부에서 화웨이와 중흥통신(ZTE)이 중국 인민해방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온다.
미 하원 정보위원회도 이듬해 10월 화웨이와 중흥통신(ZTE)의 장비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 행위나 사이버 전쟁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구입을 피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이 당시 화웨이는 이미 시스코에 이어 통신네트워크 장비업체 2위이자 휴대폰 시장 5위로 부상한 상황이었다.
화웨이는 종업원들이 9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종업원 지주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는 표면상의 지배구조일 뿐 △화웨이의 창업자 런정페이가 인민해방군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 간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 △화웨이의 성장에는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사실상 국영기업으로 본다. 화웨이는 비상장기업이어서 대주주와 이사회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미정부 동맹국에 화웨이 제품 사용중단 촉구…정부 입찰 차단
훨씬 파급력이 큰 조치는 2020년 8월 13일부터 시행되는 2단계 제재다.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는 모든 회사의 미국 정부 입찰을 금지한다. 일례로 국내 IT회사가 화웨이 제품을 사용한다면 미국 정부 입찰에 참여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미 수출을 고려하는 기업들의 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본통신사업자 중 유일하게 4세대(4G) 통신장비로 화웨이 제품을 써온 소프트뱅크는 최근 4G, 5G 모두에서 중국산 사용을 배제하기로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프트뱅크로서는 이대로 중국산 제품을 사용할 경우 향후 미국시장과 일본정부와의 거래에서 불리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다른 나라도 화웨이 보이콧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과 첩보 동맹을 맺고 있는 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 등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들은 지난 7월 회합을 갖고 화웨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이미 호주, 뉴질랜드는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를 선언한 상태다. T모바일 지분 64%를 가진 도이치텔레콤 역시 화웨이 장비를 배제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 이동통신사인 T모바일과 스프린트의 합병을 앞두고 미 당국의 승인이 절실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그러나 미국의 견제에도 화웨이와의 거래를 계속하겠다는 국가와 기업도 적지 않다. 독일은 화웨이가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으며 브루노 르 메이어 프랑스 재무장관 역시 “화웨이는 프랑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관련한 투자도 활발히 진행 중”이라며 “국가 주권이나 기술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있어 일방적인 배척보다는 합리적인 태도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웨이와 함께 3400마일((5371km) 길이의 해저 네트워크 케이블을 구축하고 있는 파푸아뉴기니의 월리엄 두마 투자장관은 “절반 이상 완료된 프로젝트를 이제와서 멈출 수 없다”며 “호주나 미국이 사이버보안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더라도 이것은 큰 나라들(big boys)의 이야기일 뿐이다. 파푸아뉴기니는 적이 없으며 통신분야에서 이득이 되는 국가를 배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