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수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그 중요성은 점차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기초과학은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져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기초과학의 세계에 쉽고 재미있게 발을 들여 보자는 취지로 매주 연재 기사를 게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전국 초·중·고등학생 대상 과학 교육 프로그램인 ‘다들배움’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들과 매주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중 재밌는 내용들을 간추려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 같은 두 개의 조각상이지만 반타블랙을 입힌 왼쪽의 조각상은 평면으로 보인다. 사진=서리 나노시스템즈(Surrey Nanosystems) 홈페이지. |
|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세상에서 가장 검은 검은색’. ‘가장 순수한 검은색’. ‘인간이 만든 블랙홀’. 이 수식어들이 가리키는 대상은 바로 ‘반타블랙(Vanta Black)’이다. 도대체 얼마나 검기에 이 같은 수식어들이 붙었을까. 보통 검정 페인트도 빛을 일정 정도는 반사한다. 하지만 이 반타블랙은 거의 모든 빛을 빨아들인다.
보통 우리가 느끼는 색이란 것은 물체가 반사한 가시광선의 파장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검정은 빛을 흡수하기에 검정으로 보인다. 비록 검정이라 하더라도 모든 빛을 흡수할 수는 없어 음영이나 질감 등은 느낄 수 있다. 반타블랙은 예외다. 이 물질은 빛 흡수율 99.965%를 자랑한다. 사실상 모든 빛을 먹어 버리는 셈이다. 또 반타블랙은 가시광선 뿐만 아니라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외선과 적외선까지 흡수한다. 이 때문에 이 반타 블랙은 모든 물체를 평면으로 만들어 버린다.
3차원 조각상도 반타블랙을 입히면 2차원의 평면이 된다. 반타블랙 옷을 입으면 평생 다림질은 할 필요가 없다. 이 경이로운 물질은 지난 2014년 영국 기업 ‘서리 나노시스템즈(Surrey Nanosystems)의 탄소나노튜브 제작 공정을 통해 탄생했다. ’반타(VANTA)‘는 ’Vertically Aligned Nano Tube Arrays‘의 약자로 수직으로 나란히 만들어진 나노튜브 배열을 뜻한다.
머리카락 굵기의 1만분의 1 정도로 아주 작고 미세한 탄소나노튜브를 서로 수직으로 매우 촘촘하게 배열하면 튜브와 튜브 사이에서 빛이 갇혀 버리게 되는 원리다. 금이나 다이아몬드보다 단위당 가격이 더 비싸다고 알려진 이 반타블랙은 기밀을 요하는 인공위성의 위장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밖에 열과 물에도 강한 이 반타블랙의 용도는 확장성이 크다. 천체 관측을 하는 망원경 내부에 반타블랙을 적용하면 이 반타블랙이 빛의 산란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해 별의 관찰을 도울 수도 있다.
| 구겨진 은박지의 한가운데 반타블랙을 칠하면 반타블랙으로 된 부분은 구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진=서리 나노시스템즈(Surrey Nanosystems) 홈페이지. |
|
예술계에서도 반타블랙 사용 독점권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인도 출신의 영국 유명 조각가 애니쉬 카푸어(Anish Kapoor)는 지난 2016년 거액을 주고 반타블랙의 예술적 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를 두고 잡음이 생기기도 했다.
도움말=손진아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