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약물운전?" 감기약·진통제도 졸음유발…시민 안전 위협

약 복용·투약 후 운전대 잡는 시민들
처벌 대상 약물 검출되면 면허 취소도 가능
경찰 “약물, 수치로 입증 어려우니 단속 힘들어”
전문가들 “개인마다 약물 작용 달라…복약지도 지켜야”
  • 등록 2024-11-13 오후 2:45:11

    수정 2024-11-13 오후 7:15:57

[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약을 먹고 무심코 잡은 운전대에 시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흔히 생각하는 ‘대마’와 같은 마약류가 아닌 일반 의약품으로도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이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탓이다. 실제 최근 강남 대로변에서 8중 추돌사고를 낸 20대 여성의 경우에도 신경 관련 처방약을 먹은 뒤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어떤 약물이 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규정을 손보고 시민들도 복약지도를 철저히 지키는 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한다.

강남에서 추돌 사고를 내 구속된 20대 무면허 운전자가 지난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면내시경 직후 잡은 운전대…아찔한 순간도

13일 이데일리의 취재를 종합하면 사고의 경중만 다를 뿐 강남 8중 추돌사고를 낸 운전자와 유사한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충북 청주에 사는 박모(38)씨는 지난 7월 말 수면 위내시경을 받은 후 잠이 덜 깬 채로 운전을 하다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다. 검진이 끝나고 30분쯤 휴식을 취한 뒤 식사도 했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박씨는 잠깐 정신을 차려보니 도로 연석을 침범해 있었다고 했다. 박씨는 “당시 상황이 사실 아직도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사람이라도 쳤으면 어찌할 뻔 했나 싶어 아찔했다”고 회상했다.

지난 5월 수면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는 경기도 안성의 황모(31)씨는 “병원에서 운전은 절대 하면 안된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내시경 검사 마치고 40분 정도 후에 운전했다”며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잘 자고 난 듯 개운해서 운전했다”고 경각심 없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조사에서도 약물 운전에 경각심 없는 모습은 고스란히 나타난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소가 30~50대 운전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운전자 42.7%가 이 같은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이 중 76.2%는 운전에 영향을 받았으며 주로 졸음과 집중력 저하를 느꼈다고 한다.

약물운전은 현행법상 처벌 대상이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45조는 자동차 등 운전자는 약물의 양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을 때 자동차를 운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규정하고 있다. 또 인명피해가 생기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위반(위험운전치사상)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 면허 취소는 물론 중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여기서 약물의 종류는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대마를 말한다. 이 때문에 최근 강남 8중 추돌사고를 낸 운전자도 혈액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인 신경안정제 성분이 검출돼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상 혐의를 적용받았다.

인천 미추홀경찰서가 7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한 도로에서 음주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곳곳에 운전 악영향 약물…“제도 정비하고, 운전자 경각심 가져야”

현행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더라도 운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약물은 상당수다. 대표적으로 근육이완제 등 진통제에 사용되는 ‘트라마돌(tramadol)’ 성분이다. 마약성을 띠지만 미국이나 영국과는 달리 마약류가 아닌 이 트라마돌은 졸음을 유발한다. 일반의약품으로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비염약, 감기약과 같은 진통제도 마찬가지다. 김은혜 대한약사회 홍보이사는 “사람마다 약의 작용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복용 후 잠이 쏟아질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잠이 깰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주의가 필요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어떤 약물이 문제인지도 잘 모른다는 반응이다. 근육이완제를 꾸준히 챙겨 먹는다는 직장인 김모(54)씨는 “약을 먹고 운전하면 안 된다는 점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단순히 어제 잠을 못 자서 피로하다고 생각하지, 약 때문에 졸리다고 생각해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도 약물 운전 단속에 한계가 있다며 하소연한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 교통과 소속 경찰관은 “즉석에서 마약 간이 검사만 가능한데, 모든 약물이 검출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이마저도 음주 처럼 검사를 강제할 수 없어 답답한 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운전자들도 괜찮겠지 생각했다가 사고를 벌이는 경우가 많아 무 자르듯 약물 종류와 영향을 수치로 입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약물운전에 대한 제도적 정비와 운전자의 경각심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비염약도 길면 24시간까지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복약지도는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앤엘)는 “운전자 입장에서는 의도치 않게 약물운전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며 “대마, 향정신성의약품, 마약, 행안부령 약물 등 제도도 난립하는 부분이 있어서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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