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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말만 무성하던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의 개인 소장 미술품이 윤곽을 드러냈다. 국보·보물급 고미술품은 물론 현대미술계를 움직이는 세계 유명작가들의 대표작을 망라한 1만 수천여점이다. 감정가 총액은 1조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소장품 규모는 지난해 10월 이 회장이 별세한 뒤 삼성이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감정을 국내 감정단체에 의뢰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감정은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등 3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고미술 분야 한 전문가는 “이건희 회장이 타계한 후에 이 회장이 개인적으로 소장한 미술품 처리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던 것으로 안다”며 “소장품에 대한 감정은 그 수순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정 대상인 미술품은 1만 수천여점으로 총액은 1조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은 지난달부터 이뤄졌으며 감정단체 소속 위원들이 장르별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삼성미술관 리움과 경기 용인 수장고 등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적인 감정 평가는 이달 말쯤 나올 것으로 추정한다.
△국보·보물 고미술, 세계 유명 현대미술…초일류 컬렉션
근현대미술품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유명작가의 초고가 작품에 대한 감정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을 앞세워 프랜시스 베이컨, 마크 로스크, 게르하르트 리히터, 루이즈 부르주아, 아니쉬 카푸어, 데미언 허스트 등을 아우른다.
삼성가의 소장품이 처음 드러난 건 2004년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하던 때다. 당시 이미 1만 5000여점을 넘겼다. SK·대림·금호 등 기업미술관 중 최고일 뿐만 아니라 그즈음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7460점의 2배에 달했다.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이 공개하고 있는 소장품은 500여점. 고미술품 300점, 현대미술품 200점 정도다.
△감정 후 상속세 위한 판매 혹은 문화재단 기증
소장품을 팔아 상속세를 충당하는 방식은 이미 대중에게 익숙하다. 지난해 간송미술문화재단이 통일신라시대 ‘보물 불상’ 2점을 국내 경매에 내놓으면서다. 상속 대상 미술품 4000여 점의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한 재단이 불상을 경매에 부쳤더랬다. 다만 고미술품일 경우 문화재보호법상 제작 50년 이상된 것이라면 나라 밖으로 반출을 할 수 없어 해외 경매는 사실상 막혀 있다. 대신 ‘문화재·미술품 물납제’에 기댈 수는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등의 사례를 계기로 재산세·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납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거다.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은 예술적·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우수한 문화유산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고 이를 공공자산화해,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필요성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삼성이 만약 상속세 충당으로 가닥을 잡을 경우 4월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 사망일 6개월 이후에는 가산세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삼성가가 실제 내야 할 상속세는 주식 상속세 11조 366억 외에도 이 회장이 생전에 보유했던 부동산·채권·현금·미술품 등 자산 등을 아우르는데, 천문학적 금액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때마침 4년 가까이 문을 닫아걸었던 삼성미술관 리움은 3월 재개관을 목표로 조용히 움직이는 중이다. 미술관은 2017년 홍라희 관장, 홍라영 총괄부관장이 차례로 물러난 이후 상설전만 열며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왔다. 이마저도 지난해 코로나 사태를 맞아서는 아예 휴관에 들어갔다. 미술계는 이번 재개관을 신호로, 삼성미술관 운영위원장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점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