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주요 산유국 간의 원유 치킨 게임이 일단락돼 유가 반등이 기대됐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유가는 오히려 하락한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배럴당 10달러 수준까지 유가가 더 떨어질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까지 나옵니다. 유가 왜 반등하지 않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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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OPEC+(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는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5월 1일부터 6월 말까지 두 달 간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가스콘덴세이트 제외)를 감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9일에도 진행된 OPEC+ 회의에선 멕시코의 감산 거부로 협상이 결렬됐습니다. 이번 회의에선 미국이 멕시코의 감산량 중 하루 25만 배럴을 대신 감당하겠다고 나서면서 합의점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국제유가는 되레 하락했습니다. 14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1.5%(0.35달러) 하락한 22.41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장중 “OPEC+가 감산을 생각하고 있는 수치는 일일 2000만 배럴이다. 일반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1000만이 아니다”라고 트윗을 올렸지만, 유가 하락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OPEC+이 합의한 원유 감축 규모가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입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된 석유 수요로 하루 최소 약 3000만배럴을 감산해야한다는 시장 기준치가 있다”라며 “이번 OPEC+에서 나온 합의점은 한참 역부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기적적으로 원유 감산에 나서 시장 기대치를 충족시킨다고 하더라도 문제점은 또 있습니다. 이미 쌓여버린 재고로 세계 원유 보관 창고가 상당부분 차있다는 점입니다.
이효석 SK증권 연구원은 “거칠게 계산할 때 현재 세계 원유 창고 규모는 약 57~62억배럴 정도로 추산할 수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재고량이 늘어, 현재 약 70% 정도 쌓여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거칠게 계산해 보자면 OPEC+이 합의한 하루 1000만배럴 정도의 원유를 감산한다고 쳤을 때 시장 기대치인 3000만배럴에 2000만배럴 못 미치는 수준이고 이게 한 달 간 지속되면 총 6억배럴의 원유가 넘치는 셈”이라며 “이대로 3개월이 지나면 원유 창고가 다 차버린다. 유가가 오르지 않았던 이유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 끝나도 배럴당 30달러 지속”
그렇다면 코로나19가 끝나면 유가 반등은 얼마 만에 어느 정도로 회복될까요? 증권가는 우선 OPEC+ 합의 직후인 올 상반기엔 배럴당 30달러 선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극심한 소비 위축에 배럴당 10달러로 되레 떨어질 수 있단 예측도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가 지나간다고 해도 30달러 수준에 머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는 겁니다. 코로나19가 주는 경제적 타격이 생각보다 심하기 때문에 소비심리가 회복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서입니다. 심혜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극단적으로 위축된 상황이라 민간의 소비는 줄어들고 저축률은 높아질 개연성이 있다”며 “즉 코로나19 이후의 소비 패턴은 이전과는 다를 것으로 완화 단계에 진입하더라도 석유 소비가 V자 반등하긴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단 다행인 점은 석유를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비중이 큰 한국의 경우 걱정이 덜하다는 점입니다. 이효석 연구원은 “이번 합의로 한 가지 뚜렷해진 점은 유가 변동성이 줄어들거라는 점”이라며 “10% 이상 급등락했던 유가가 5% 이하, 3% 이하로 점차 줄어 바닥이 서서히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때가 되면 사람들이 저유가가 장기화할 것이다는 생각이 만연해 질 거고. 저유가 시대가 지속된다는 건 석유 수입국인 한국 상황에 좋다”며 “당장 원유의 증류를 통해 다양한 탄화수소 성분 중에서 납사(Naphtha)를 기반으로 하는 화학회사는 수혜를 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