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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강신우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재임 초는 두 거인이 얼마나 ‘준비된 대통령’이었는지 확인시켜 줬다. 비록 둘 모두 임기 말 결정적인 실책도 있긴 했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게 장기적 안목이라는 점을 YS와 DJ는 몸소 보여줬다.
YS의 임기 초는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았다. 그 자신이 대통령이 된 자체가 의미 있었지만, 거기서 머무르지 않았다. YS의 ‘군사정권 지우기’ 개혁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주도 면밀했다. 군내 최대파벌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기득권의 저항을 부른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건, 평생 군부독재 해체와 민주화를 열망해온 YS가 키를 잡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DJ는 자타공인 경제 전문가다. 지난 1969년부터 시작된 그의 대중경제론은 유명하다. 특히 1971년 대선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장론에 맞서 내놓은 ‘대중경제론:100문100답’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DJ의 경제이론은 이후 수십년간 진화와 발전을 거듭한다. DJ가 외환위기 때 권력을 잡고, 초유의 환란을 슬기롭게 넘어선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치 전문가들 “방향성 뚜렷한 리더십 필요”
‘큰 리더십’이 그리운 시대. 우리사회는 YS와 DJ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이데일리가 정치 전문가들에게 해법을 구해보니 역시 이 ‘준비’를 언급하는 이들이 많았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YS와 DJ는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려 밭을 일군 분들”이라면서 “그 뒤를 따르려는 사람들은 새 곡식을 심어서 거두고 있느냐. 여야를 막론하고 너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 역시 “조금 긴 시간동안 어젠다를 이끌고 가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틈만나면 싸우는 지금의 국회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사회의 갈등을 조정해 그 비용을 줄여야 할 정치가 진영싸움에 매몰돼 오히려 갈등을 더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YS와 DJ가 투쟁하던 시절처럼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는 시절도 아닌데, 더 사생결단식 싸움을 벌인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지역주의 고착화와 제왕적 리더십은 고쳐야
그렇다고 두 거인이 발자국에서 배울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중 지역주의 고착화는 대표적인 폐습으로 꼽힌다.
YS와 DJ는 1987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는 성과를 올렸다. 다만 최대 관건은 둘의 후보 단일화였다. 둘은 이런저런 명분을 댔지만 끝까지 자신이 대선후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그해 12월 대선에서 낙선하고 말았다. 그때 노태우 전 대통령이 36.6%를 득표했다. YS와 DJ는 각각 28.0%, 27.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우리 정치의 최대 고질병인 영·호남 지역구도는 그때가 시작이었다.
김용철 교수는 “YS와 DJ는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공헌한 반면에 지역구도를 만드는데도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우리 시대에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두 거인은 유신체제와 5공 신군부에 저항하며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닮아가기도 했다. YS와 DJ는 ‘제왕적 지도자’이 전형이었다. 이정희 교수는 “시어머니 욕하면서 시어머니에게 배운다고, YS와 DJ의 리더십을 민주적인 것으로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