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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에 나선 국민연금에 대해 기관투자가들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대주주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한국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았던 만큼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반기는 모양새다. 다만 이를 지켜보는 재계는 국민연금이 과도한 경영 간섭에 나서는 게 아니냐며 ‘연금 사회주의’ 현실화에 우려를 표한다.
집사 본격적으로 나선 국민연금
16일 보건복지부는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대한항공·한진칼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여부를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앞으로 국민연금은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결정에 따라 경영 참여형 주주권 행사에 나서게 된다. 한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곳의 주주권 행사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다른 연기금 CIO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주주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유독 심하다”며 “국민연금도 이에 대한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실제 국민연금이 지난해 기업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졌던 안건만 봐도 ‘임원 보수 한도 및 퇴직금’ 관련 안건이 가장 많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은 571개 기업의 주주총회(정기·임시)에 총 3713개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이 반대했던 안건을 종류별로 보면 ‘임원 보수 한도 및 퇴직금’ 관련 안건 총 897건 가운데 245건(27.3%)을 반대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는 전년보다 21.2%포인트나 높아졌다. 이외에도 △정관 23.0%(52건) △선임·해임 14.9%(290건) △합병·분할 12.0%(3건) 등에도 반대표를 들었다.
예컨대 대한항공이 그동안 다양한 갑질 문제로 논란이 됐던 만큼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주주들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면 훼손됐던 기업가치 제고로 수익성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판단이다. 한 연기금 CIO는 “항상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문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었다”며 “향후 국민연금 영향을 받은 기관투자가들이 늘어나면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는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계 “과도한 기업 경영 간섭 우려”
기관투자가들의 반응과는 다르게 재계는 국민연금의 과도한 기업 경영 간섭이라 우려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근본취지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며 “과도한 경영권 개입이 민간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그룹 관계자는 “회사의 미래 발전을 함께 고민해야 할 투자자가 경영권 개입으로 회사 경영을 훼방 놓아서는 안된다”며 “한진그룹 오너일가 갑질 논란을 빌미로 순차적으로 기업들에 불똥이 튈까 봐 두렵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재계는 국민연금이 정치화될 것을 우려했다. 국민연금의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 복지부 장관이고 당연직 위원 4명이 주요 부처 차관이다. 이처럼 정치권력으로 자유롭지 못한 한계가 있는데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에는 독립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강화할지에 대한 방안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진그룹은 “그룹 공식 입장은 없다”고 밝히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로 시작된 한진 오너가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에 이어 이제 국민연금이 나서 경영권을 흔들고 있어서다.
“내부와 외부 의견 형평성 있게 수렴”
전문가들은 한진그룹 건이 전례가 될 수 있는 만큼 국민연금이 다양한 의견을 형평성 있게 수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연기금 CIO는 “회사의 합병이든 분할이든 방향성을 어느 쪽으로 가져가야 주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는 쉽지 않은 판단”이라며 “한진그룹의 건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의 의견만 들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진칼 2대 주주로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KCGI와의 연합에 대해서는 우려도 표했다. 한 연기금 CIO는 “KCGI도 결국에는 사모펀드로 투자자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사모펀드들의 의견을 참고하는 수준에 그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하는 방향은 옳으나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은 독립성과 책임감을 가진 내부와 외부 위원회 마련이 필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