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박제된 클래식? 새 시대의 음악으로 진화 중이죠"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작곡가 신동훈
첼로 협주곡 '밤의 귀의' 12월 아시아 초연
"현대음악, 부담 놓고 소리 그 자체 느끼길"
진은숙 제자…"작품에 대한 솔직함 배워"
  • 등록 2024-10-31 오후 12:31:42

    수정 2024-10-31 오후 7:18:41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괄목할만한 성장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비단 연주자들의 활약 때문만은 아니다. 지휘자는 물론 작곡가들도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과 영미권에서 주목을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작곡가 신동훈. (사진=롯데문화재단)
작곡가 신동훈(41)도 그중 한 명이다. 신 작곡가는 2019년 영국비평가협회의 ‘젊은 작곡가상’, 2021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산하 카라얀 아카데미 후원재단이 수여하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작곡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모두 다 한국 작곡가 최초 수상 기록이다.

신 작곡가가 클라우디오 아바도 작곡상 수상을 계기로 위촉 작곡한 첼로 협주곡 ‘밤의 귀의’가 한국 관객에 처음 소개된다. 오는 12월 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BBC 프롬스 코리아’ 개막 공연에서 첼리스트 한재민의 협연으로 아시아 초연한다. 신 작곡가는 최근 이데일리와 서면 인터뷰에서 “올해 처음 개최하는 ‘BBC 프롬스 코리아’에서 ‘밤의 귀의’ 아시아 초연을 선보일 수 있어 영광”이라며 “한재민과의 첫 협업도 기대가 많다”고 소감을 전했다.

‘밤의 귀의’는 신 작곡가가 오스트리아 시인 게오르그 트라클의 동명의 시(詩)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총 5악장 구성으로 각각 ‘쇠락’, ‘트럼펫’, ‘겨울 황혼’, ‘밤’, ‘밤의 귀의’로 구성돼 있다. 트라클은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암울한 시대상 속에서 세상과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투쟁을 노래했다. 신 작곡가는 이를 오케스트라(세계)와 첼로(개인)의 투쟁으로 바라보며 자신만의 음악으로 풀어냈다. 신 작곡가는 “오랫동안 감정을 표현하는 낭만주의 연장선에 있는 음악을 작업하고자 노력했는데, 이 곡은 그 방향으로 한 발 더 내딛게 해준 곡이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음악은 낯설고 어렵다는 시선 때문에 현대음악 작곡가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조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신 작곡가는 “클래식 음악은 박물관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클래식이 박제된 음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새 시대의 음악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것,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자신의 작곡 철학을 밝혔다.

작곡가 신동훈. (사진=롯데문화재단)
현대음악에 접근하기 위해선 “이해에 대한 중압감을 내려놓을 것”을 권했다. 신 작곡가는 “모든 예술을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고, 완전한 이해 또한 애초에 불가능하다”며 “구조적으로 복잡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도 많은 이들이 ‘이해’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처럼 현대음악도 부담에서 벗어나 소리 그 자체를 느끼고 즐기면 된다”고 말했다.

신 작곡가는 열렬한 독서광이다. 어릴 때 꿈 또한 작곡가가 아닌 소설가였다. 영국비평가협회 ‘젊은 작곡가상’을 수상한 작품은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에게서 영감을 받은 ‘카프카의 꿈’이었다. 최근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죠지 엘리엇의 ‘미들 마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등을 다시 읽고 있다. 그는 “음악과 문학은 시간 위에 직선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닮았다”면서도 “문학은 어디까지나 영감의 차원일 뿐 작곡은 음과 리듬, 화성을 다루는 일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강조했다.

신 작곡가는 2030년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다. 그에 대한 세계 클래식계의 높은 관심을 잘 보여준다. 내년 1월에는 베를린 필하모닉 위촉으로 작곡한 비올라 협주곡을 초연한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와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의 유럽 투어를 위한 바이올린 소나타 작곡, 그리고 런던 심포니·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보스턴 심포니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신곡 작업도 예정돼 있다.

신 작곡가는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의 제자다. 스승에게서 받은 가르침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단호했다. “본인의 작품에 항상 솔직할 것을 강조하셨고, 이는 작곡가로 살아가는데 큰 지침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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