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변호인이 재판장에서 한 말이다. 고령인 데다 와병 중인 조 회장이 한달에 한번 꼴로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 오는 이유는 20년 전 한국카프로락탐(현 카프로) 경영권을 둘러싸고 경쟁사와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 동원한 해외 페이퍼컴퍼니가 발단이다.
1996년 2월. 효성과 코오롱, 고려합섬이 공동으로 출자한 한국카프로락탐에 대한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표면상 드러난 효성 측 지분은 20.03%로 코오롱(19.2%), 고려합섬(7.4%)의 보유 지분을 고려하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효성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시설 증설을 하고 싶었지만, 추가 자금을 투자하고 싶지 않던 코오롱은 반대했다. 경영권 분쟁이 격화하는 과정에서 코오롱은 효성이 금융실명제·공정거래법·증권거래법 등을 위반했다며 한국카프로락탐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효성그룹 임직원의 신원과 보유주식 수를 폭로했다. 9개 계열사 62명의 임직원이 132억 3800만원 규모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사에 착수한 공정거래위원회는 효성이 한국카프로락탐 주식을 계열사 임원 명의로 위장 분산해 놓은 사실을 적발하고 차명 계좌의 주식을 매각하도록 권고했다. 효성은 임직원 보유 물량을 매각하기로 했고, 분쟁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당시 효성은 표면적으로는 차명 주식을 처분했지만 실제로는 해외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인 CTI, LF를 통해 차명 주식을 매입했다. 공정위의 권고는 물론이고 공동으로 출자한 경쟁사와 한 ‘신사협정’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더 있다. 효성 그룹이 2006년 해외 부실채권을 처분하는 과정에 효성 싱가포르가 보유하고 있는 CTI, LF의 대출금 채권 233억원을 회수불능의 부실채권으로 분류했다. 사실상 CTI, LF 채무가 사라진 셈이다.
조 회장 측 변호인은 “효성 싱가포르가 손실 처리할 당시 한국카프로락탐 주가는 4000원 선에 머물렀다”며 “손실을 보지 않는 수준의 주가가 1만900원이었던 만큼 보유지분을 다 팔아도 회수가 불가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효성은 한국카프로락탐 경영권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차명으로 지분을 매입한 결과는 십수년이 지나 다시 조 회장을 괴롭히고 있다. 1936년생인 조 회장은 고령인 데다 전립선암 환자다. 2010년엔 담낭암 수술을 받으면서 간 일부도 떼어냈다. 재판장에 오랜 시간 앉아 있는 것도 힘든 상태다. 효성은 2013년 국세청으로부터 과징금 추징도 당했다.
효성 관계자는 “주력 제품인 나일론 원료를 공급하는 한국카프로락탐 지분을 지키는 일은 그룹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며 “회사를 위한 결정을 개인적 비리로 몰고 가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