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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국회는 5000만 국민의 모든 민원이 모이는 사랑방이다. 이런 민원상담소에서 화제에 오른다는 건 그 사안을 원하는 국민이 적지 않음을 뜻한다.
이를테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 등 경제활성화 법안은 여론조사상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정도의 국민은 원한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박 대통령이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강한 톤으로 법안 처리를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7.8%(리얼미터)다. 반대로 새정치민주연합이 내세우는 경제민주화 법안 역시 그 지지층을 갖고 있다.
해결되지 않는 민원은 사실상 의미를 잃는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중지(衆智)를 모아 결론을 내지 않는다면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 한 관계자는 “입법을 위해 여야가 다투는 과정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면서도 “입법은 타이밍이 있다. 법안을 오래 잡아놓는다고 해서 논의 수준이 무르익는 건 아니다”고 했다. 한 번 시기를 놓친 사안은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예컨대 이명박정부 때인 2011년 12월 처음 발의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은 4년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국회 안팎에서 여야가 맨날 싸우면서도 결과물은 미미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5개월 남은 19대국회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여야간 쟁점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안을 1만7000건 이상 무더기 발의해놓고 ‘나몰라라’ 하는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능력 밖의 민원만 잔뜩 받아놓고 모른척하는 행태인 탓이다.
19대국회 들어 1만1500여건 자동폐기 수순 가능성
과거 국회보다 급증했다. 18대국회(6301건) 자동폐기 기록이 역대 최대였는데, 무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여야 가릴 것없이 법안 발의를 실적쌓기용으로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파벌싸움은 열심히 하면서 법을 만들 때는 관심이 없다. 제안만 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다”면서 “본인의 법안이 어떤 의미를 갖고 국민에게 돌아가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는 더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핵심법안을 놓고 줄다리기만 하다가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이해관계자가 많은 사안을 적은 비용으로 풀어내는 정치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산하 경제재정소위는 이날 여당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과 야당의 사회적경제기본법안 등을 심사하려 했지만 입씨름만 벌였다. 상대를 향한 여야의 반대논리는 수년째 그대로다.
중립 성향의 여당 한 중진 의원은 “19대국회 들어 처리된 법안을 보면 알맹이가 없는 게 대부분”이라면서 “역대 최악 국회”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국회가 입법을 빌미로 필요 이상의 정쟁을 벌여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국민에 사회질서 강조하면서 국회의 ‘기본 룰’ 외면
입법 뿐만 아니다. 국회는 법에 명시된 기본 룰조차 지키지 않았다. 새해 예산안이 헌법에 규정된 처리시한(12월2일)을 또 넘긴 게 대표적이다.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11월13일)은 한달 가까이 지났다.
사회질서를 매번 강조하는 의원들이 오히려 자신의 룰은 내팽개쳐버린 것이다. 법을 어겨도 의원 개개인에 돌아가는 제재는 전혀 없다보니 위법 불감증에 걸렸다는 지적이다. 예산안 처리시한을 넘기면서까지 여야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에 혈안인 것도 구태로 꼽힌다.
정기국회는 이날 종료되지만 19대국회가 막을 내린 건 아니다. 다만 여야는 모두 남은 5개월간 총선 밥그릇 싸움에 골몰할 게 자명해 보인다. 또다른 국회 관계자는 “총선 정국에 들어서면 법안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라면서 “법안 하나 더 통과시킨다고 해서 당선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