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핵심 쟁점이었던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와 관련해 양국이 다소 모호한 수준에서 타협함에 따라, 향후 논란의 불씨가 재점화할 가능성도 여전하다는 평가도 있다.
사사에안(案)보다 진전 평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이날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기시다 외무상이 대독한 사죄문에서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일본이 그동안 책임의 주체를 적시하지 않았고 도덕적 책임만을 인정해온 점에 미뤄 이번 합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법적’까지는 아니지만, 일본이 일종의 ‘외교적’ 책임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안이 2012년 3월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제안했다가 거부된 ‘사사에안(案)’보다 진전된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진창수 세종연구원장은 “법적 책임은 일본이 앞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책임 통감 등의 표현에서 양측이 타협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자녀, 손자, 그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며 “그 결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합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타결을 (한일 국교정상화) 70주년의 해에 할 수 있었다”며 “양국이 힘을 모아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강조했다.
日, 국내용 ‘말 뒤집기’ 우려
실제로 아직 국내 분위기는 호의적이지 않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8) 할머니는 “(협상내용을)전부 인정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아베 총리 명의로 발표된 사죄에 대해 “말만 그렇지 한 게 없다”며 인정할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출연해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을 설립한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우리는 돈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고도 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도 성명을 내어“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를 끌어들인 기금을 조성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마무리 지으려 하는 것은 반역사적 범죄 행위”라고 반발했다.
일각에선 일본이 통상적으로 사용했던 ‘국내용 발언’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시다 외무상이 본국으로 돌아가 ‘도의적 책임’을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하면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 정부가 일본 국회 답변 등에서 합의를 번복하는 듯한 발언을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위안부 소녀상을 이전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점도 ‘불씨’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위안부 피해자 분들께 이번 합의의 의미를 최대한 잘 설명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 타결 이후 청와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번 합의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일본측의 조치가 신속히, 합의한 바에 따라서 성실하게 이행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