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민들레’가 10.29 ‘이태원 참사’ 유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연일 “명백한 2차 가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시민사회계에서도 해당 언론사에 도의적 책임에 대한 비난과 함께 법적 책임까지 묻겠다며 공분이 일고 있다. 고발장까지 줄줄이 접수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단을 자의적 판단 하에 공개한 해당 언론사에 대해 법적 처벌을 할 수 있을까.
| ‘시민언론 민들레’가 유족의 동의 없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가운데 희생자 11명의 이름을 비공개 처리했다. (사진=민들레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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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15일 “이태원 사고 희생자 실명 등 개인정보를 유족 동의 없이 무단으로 공개한 것은 유족에 대한 끔찍한 테러”라며 “희생자 실명이 공개됨으로써 악플이나 유언비어 유포 등으로 인해 고인의 명예가 실추되고 유족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해당 언론사를 고발했다. 보수단체인 신자유연대도 이날 같은 혐의와 고발취지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법’ 혐의가 재조명 받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 △개인정보처리 주체자 등의 이유로 법 위반 소지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조에 따르면 ‘개인정보는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라고 명시돼 있다. 문헌상 고인이 된 참사 희생자는 해당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다툼의 여지는 있다. 개인정보위 측은 “개인정보는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이기에 사망자의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면서도 “사망자에 관한 정보라도 유족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정보는 유족의 개인정보에 해당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의원도 개인정보위에서 낸 해설서를 근거로 들었다. 해설서에는 ‘사망자의 정보라고 하더라도 유족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정보는 유족의 개인 정보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혐의가 인정되려면 ‘개인정보 처리자’라는 난관도 넘어야 한다. 현행법상 개인정보 보호법 안에는 ‘개인정보 처리자’가 주체로 명시돼 있다. 이 주체는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정보파일을 운용하고 처리하는 공공기관, 법인 등에 해당한다. 명단을 공개한 언론사는 개인정보 처리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를 종합하면 명단을 언론사에 ‘유출’한 관계자는 신원과 함께 명단 확보·유출 경로 등과 같은 불법성을 따져봐야 하지만, 명단을 ‘공개’한 해당 언론사는 형사 처벌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김범한 법무법인YK 변호사는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 관리의 주체성이 먼저 인정돼야 하고, 개인정보는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여야 한다”며 “혐의가 성립해 형사처벌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서혜진 변호사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의 정보를 정보 관리 주체자가 불법으로 제공해야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는 요건이 성립된다”며 “명단을 공개한 것에 대해선 적어도 법률상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소지는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명예훼손이나 사자명예훼손 혐의도 성립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시선이다. 명예훼손 혐의는 살아 있는 자의 명예를 해치는 행위로 ‘공연성’과 ‘비방할 목적’이 요건으로 담겨 있어야 한다.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 역시 현행법상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만 성립한다고 규정돼 있다.
형사 처벌은 어렵지만, 민사상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서 변호사는 “유족의 동의 없이 명단을 공개한 것만으로도 도의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이고, 형사 처벌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사적으로 문제 삼을 수는 있다”고 전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 역시 “유족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고, 정신적 충격 등 손해가 입증되면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