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재판장 이상주)는 17일 살인, 아동복지법상 상습아동학대·아동유기·방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어머니 장모(35)씨와 아동유기·방임, 아동학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양아버지 안모(38)씨의 공판을 열었다. 이날도 앞선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검찰이 신청한 증인을 신문하는 절차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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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판엔 정인양 사망 이후 부검을 담당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부검의 A씨가 출석했다. A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02년부터 국과수에서 부검의로 일했으며, 현재까지 약 3800건의 부검을 해왔다. 그는 부검 당시 정인양 시신 상태를 묻는 검찰 질문에 “지금까지 내가 봤던 아동학대 피해자 중 제일 심한 상처를 보였다”고 증언했다.
A씨는 “학대인지 아닌지 부검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손상 자체가 심했다”며 “머리·갈비뼈에선 과거에 생겼다가 낫고 있는 골절이 발견됐고, 췌장에선 사망일 최소 며칠 전에 발생했다가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상처의 흔적도 보였다”며 정인양 몸에 골절 등의 흔적이 너무 많아 사고가 아닌 학대에 의한 상처로 추정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A씨는 정인양 팔 부분 골절에 대해선 “이 부분 골절은 아동학대를 시사한다”며 “넘어져서 생기는 게 아닌, 팔을 세게 잡아당길 때 생기는 골절로 아동학대를 당한 피해자의 몸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A씨는 부검 당시 정인양의 몸에 상처가 너무 많아 “사고로는 다 생길 수 없는 손상”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양부모 측이 심폐소생술(CPR) 과정에서 복부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자 “소아는 CPR을 약하게 하기 때문에 복부 손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CPR로는 췌장이 절단될 만큼 강한 힘이 가해지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날 공판에서 정인양의 부검 감정서가 법정 내부에 설치된 화면에 공개되자 이를 지켜보던 일부 방청객들은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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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판이 열린 법원 앞은 재차 양부모의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로 또다시 가득 찼다.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시민들 약 70여명은 지난 세 차례의 공판에 이어 이날 오전부터 ‘양부모에게 사형을 요구한다’, ‘정인아 미안해’ 등의 피켓을 들고 정인양의 양부모에 대한 강한 처벌을 재판부에 요구했다.
시위에 참여한 이영연(58)씨는 “충남 서산에서 출발해 공판 때마다 법원 앞에 오고 있고, 지난 12일엔 국회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도 벌였다”며 “‘싫어요’, ‘그만 하세요’라는 말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사정없이 짓밟고 두들겨 팼다고 하니 양부모들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라고 성토했다.
일부 시민들은 재판이 열리는 남부지법이 아닌, 전국 각지 다른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 관계자는 “모든 곳에서 아동학대 재판이 올바르게 이뤄지기 바라는 마음에서 시위를 계획했다”며 “아동학대로 인한 재판은 모든 지역에서 이뤄질 수 있는 재판이어서 모든 법원에 경각심과 압박감을 주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인양이 학대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진술은 공판마다 이어지고 있다. 앞서 열린 공판에선 정인양이 다녔던 어린이집의 원장과 교사, 정인양의 입양 등을 담당했던 홀트아동복지회 사회복지사, 장씨 부부의 이웃 주민, 장씨 지인, 장씨에 대한 심리검사 등을 담당한 심리분석관 등이 나왔는데, 이들은 모두 정인양이 학대당한 정황이 담긴 진술을 법정에서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