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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반발했지만, 외교가에서는 비로소 정부가 외교적 노력에 나설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고 평가한다.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진정으로 이행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22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전날 판결에 대해 “사법부의 판결이라는 족쇄에 묶어놨던 위안부 문제를 외교의 공간으로 환원시켰다”며 “지금이라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제대로 이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판결을 “외교적 해법을 찾으라는 주문”이라고 해석하면서도 “출구가 없는 문제”라고 해석했다. 일본정부가 사죄를 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할 뿐더러, 반대급부로서 소녀상 이전 등 우리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 합의 직후 “위안부 전쟁범죄 인정한 것 아니다” 발언에 국내외 반발
합의문을 보면 당시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는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며 “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을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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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관계자는 “이렇게 하면 누가 앞으로 누가 그 멍에를 짊어지려고 할 것이냐”라며 “결과적으로 이를 비판한 문재인 대통령조차 취임 이후에는 해당 합의를 공식인정한다며 입장을 바꿨다. 협상 자체를 적폐로 취급하며 한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빌미를 일본에게 줬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이야말로 일본이 진정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방점 역시 이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내신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일본이 2015년 합의정신에 따라서 반성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면 문제의 99%는 해결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 모두 국민감정 악화…관계개선 공감대 형성은 희망
문제는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한·일 양국 모두 상대 국가에 대한 국민감정이 악화했다는 것이다.
다만 한·일 모두 이대로 양국 관계를 내버려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사설을 통해 “쌍방 모두 불만이 남아 있지만, 서로 다가서려고 노력했던 2015년 위안부 문제의 정부 간 합의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덕 교수는 아직 화해·치유 재단 등에서 위로금을 수령하지 않은 생존자 12명에게 이를 전달하고 이 기회에 일본 총리의 사죄를 담은 편지를 전달하는 것을 제안했다. 아베 총리는 거부했지만, 역대 많은 일본 총리들이 편지의 형식으로 사죄의 마음을 전했다. 양 교수는 먼저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위안부 문제가 단기간에 풀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국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의견을 수렴해나가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며 “그동안 정부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해왔지만,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피해자는 한·일 정부 모두에게 방치됐다”고 비판했다.
한편 내달 2, 3일 영국 런던에서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담이 열린다. 정 장관 역시 주최국인 영국의 초대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한·일 외교장관이 처음 대면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