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게 접근해 친밀관계를 쌓은 뒤 취약점을 이용해 성적 행위를 요구하는 ‘그루밍’ 범죄가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그루밍 피해가 늘어 미성년자 대상 온라인 그루밍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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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접수한 피해상담 통계 분석 결과를 보면, 2019년 전체 피해 상담사례 452건(피해자 299명) 중 온라인 그루밍 피해 접수는 42건으로,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온라인 그루밍 피해자 중 10대가 33건으로 전체 피해자의 78.6%로 다른 유형의 피해보다 미성년 피해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김여진 센터 피해지원팀장은 “그루밍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고 성적인 호기심을 유발해 ‘이런 거 해보지 않을래’라고 유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며 “신체 촬영물 전송 요구에서 더 나아가 사진을 유포하거나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청소년상담소 대표는 “이전에는 아동 대상 그루밍을 하려면 집 밖으로 나가 타깃을 물색하는 등 시간을 많이 들여야 했는데 온라인에서는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다”며 “가해자들이 아이들이 선호하는 명문대 학생 신분으로 위장해 아이들의 외로움이나 진로 등 취약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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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등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그루밍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가해자들을 처벌하는데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현행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동·청소년 성매수에 대한 유인 및 권유행위를 처벌하고 있지만 채팅 앱 등 정보통신망에서 성적 목적이 담긴 권유를 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가해자가 청소년에게 성적 목적으로 접근해 친밀감을 쌓는 경우에도 그루밍 자체에 대한 제재보다는 기존 법을 해석해 가해자를 처벌해야 했다. 청소년 본인의 신체를 만지게 하거나 ‘포즈를 취해 보내라’는 구체적 지시가 있을 경우 강제추행죄를 적용하고, 신체를 촬영하라고 요구한 경우에는 아동복지법상 아동에 대한 음행강요죄를 적용하는 등 개별 피해사례에 맞는 법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온라인 그루밍이라는 신종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게 아니라, ‘요구에 의해 전송한 촬영물이 음란물에 해당하는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법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해 21대 국회에서 지난 6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해 성적 권유를 하는 행위를 구체화해 처벌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에는 이같은 증거수집을 위해 사법경찰관이 위장된 신분으로 범죄행위에 관여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김여진 팀장은 “우리 사회에서 그루밍에 대한 인식이 낮아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판단할 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신체 촬영물을 요구하는 행위 그 자체를 처벌하는 등 피해자가 촬영물을 보내주기 전 단계에서도 유인만으로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이)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