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한국문학, 한국 민주주의는 김지하에게 빚진 바가 적지 않다.”(임동확 시인), ”진영 논리 따위 모르겠다. 영욕과 애증, 탁월한 서정시인으로 기억한다.”(류근 시인).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저항시로 독재정권에 맞선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이 영면에 들었다. 81세 일기로 지난 8일 타계한 김 시인의 발인식이 11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애도 속에 엄수됐다.
이날 발인식에는 두 아들인 김원보 작가와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이청산 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 윤형근 한살림생협연합회 전무, 황도근 무위당학교 교장 등 생전 고인과 인연이 있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석해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유해는 고 박경리 작가의 딸이자 2019년 먼저 세상을 뜬 아내 김영주 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묻힌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선영에 안치됐다.
| 11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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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죽음을 앞두고 어떤 말이나 글도 남기지 않았으나, 고인을 기리는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그의 뜻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추모행사가 열린다. 토지문화재단은 고인의 49재 날인 오는 6월25일 서울에서 ‘생명 평화 천지 굿’의 이름으로 추모문화제를 개최한다.
재단 측은 “김지하 시인의 본령은 생명사상과 생명미학에 있다”며 “김지하 시인과 함께 문화활동을 했던 예술인 등을 중심으로 ‘생명 평화 천지굿’이라는 추모문화제를 화해와 상생의 차원에서 갖겠다”고 밝혔다. 유 전 문화재청장과 이 전 민예총 이사장을 비롯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나선화 생명과평화의길 상임이사, 채희완 민족미학연구소 소장, 임진택 연극 연출가 등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며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2018년 고인의 마지막 책이 된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출간한 도서출판 작가의 손정순 대표는 고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연구자의 글을 모은 추모집을 연내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고인은 오랜 투병생활 끝에 지난 8일 오후 4시 원주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생전 고인은 서울대 미학과 재학시절 4·19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등을 겪으면서 학생운동에 깊게 관여했고 이를 저항시로 표현했다. 1970년 정경유착을 질타한 오적(五賊)을 발표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4년에는 민청학련 사건배후자로 지목돼 긴급조치 4호 위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이후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종교사상에 입각한 생명운동을 벌이는데 힘썼다
1991년 명지대 강경대 군이 전경의 폭력에 맞아 사망한 뒤 청년들의 분신과 투신이 이어지자 조선일보에 실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으로 민주화운동 진영과 갈라섰다. 김 시인은 10년 뒤 ‘실천문학’ 여름호 대담에서 칼럼과 관련해 해명하고 사과의 뜻을 표명했으나, 2012년 대선 때 유신시대 자신과 대립했던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해 ‘변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 선언을 했다.
| 11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김지하 시인의 발인이 엄수돼 지인이 슬픔에 잠겨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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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김지하 시인의 장례 예배가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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