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가계부채 폭주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달 가계부채 증가액은 무려 8조7000억원에 달했다. 우리 사회 각층의 가계부채 경고음을 비웃기라고 하는 듯한 움직임이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더 주목할 건 생계형대출도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계형대출은 급한 생활자금이 필요할 때는 유용하지만, 대출 상환능력은 주택담보대출보다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것으로 관측된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개인사업자대출이 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으로 꼽힌다. 하나같이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볼 만한 위험요인이다.
8월 은행권 가계대출 8.7조 증가…사상 최대
8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8월중 금융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주택담보대출+마이너스통장대출)은 8조7000억원 더 증가했다. 8월말 현재 잔액은 682조4000억원이다.
이 정도 증가폭은 한은이 통계를 편제한 2008년 이후 8월 기준 사상 최대치다. 월간 기준으로는 지난해 10월(9조원↑) 이후 역대 두번째로 높다.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 6조2000억원 증가했다. 이 역시 8월 기준 역대 최대치다. 현재 잔액은 512조7000억원이다.
마이너스통장대출도 주택담보대출 못지않게 주목된다. 지난달 증가액은 2조5000억원. 이는 2010년 5월(2조7000억원↑)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전달(5000억원↑)과 비교하면 2억원 이상 더 늘었다. 한은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대출은 주로 생계비 수요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그 자체가 부정적인 건 아니다. 대출은 자발적인 소비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출 용도가 부동산 등 특정 부문에 과도하게 쏠려있는 점이 문제다. 이 때문에 소비는 오히려 더 제약을 받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가계대출이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구경회 현대증권 연구원은 “8조7000억원의 월 증가액은 계절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다소 많은 금액”이라면서 “최근 정부의 대책에 강력한 규제가 없어 가계대출의 높은 증가세는 이번달에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자영업대출이 많아지는 것도 관심을 가질 만한 대목이다. 지난달 은행권의 개인사업자대출은 2조2000억원 올랐다. 한은 관계자는 “개인사업자대출은 꾸준히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美 금리 인상기, 대출자들 부담 더 커질 수도
가계부채 증가 우려가 최근 더 두드러지는 건 이유가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기에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시기의 문제만 남았을 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인사들의 인상 기조는 확실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 통화정책도 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 대출자들의 불안과 부담으로 이어지고, 우리 경제를 더 짓누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계부채를 인위적으로 억제하자니, 거의 유일한 성장의 불씨인 부동산 경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당국의 고민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통화당국인 한은은 당분간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묶어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9일 열리는 이번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다수다. 가계부채 우려 앞에서 내리기도 어렵고, 대출자의 부담 앞에서 올리기도 어려워서다.
이데일리가 최근 경제·금융 전문가 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비슷했다. 전문가 16명 모두 한은이 기준금리를 변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날 채권시장도 금통위에 대한 관망세가 짙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거래일 대비 1.0bp(1bp=0.01%포인트) 상승한 1.288%에 마감했다. 3년물 금리는 지난 2일(1.326%) 이후 4거래일 연속 내리다가, 이날 상승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