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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증시에서 게임스탑, AMC엔터테인먼트홀딩스, 블랙베리 등 개인 투자자가 대거 몰린 주가가 폭등한 것과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월가(街)의 권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기관 투자자에서 개인 투자자로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이전까지는 헤지펀드 등 기관 투자자들이 개인 투자자들을 상대로 이익을 봤지만, 이번에는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 세력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는 것이다. 공매도란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 비싸게 매각한 뒤 나중에 주가가 하락하면 싸게 사서 갚는 방식의 투자 전략이다. 주로 헤지펀드 등 기관 투자자들이 애용한다.
실제로 이버에 게임스탑 대전에서 공매도했던 헤지펀드들은 막대한 손실을 봤다. 금융분석업체 S3 파트너스에 따르면 숏(매도) 포지션을 취한 투자자들은 이날 게임스탑에서만 236억달러(한화 약 26조 34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게임스탑 주가가 135% 폭등했기 때문이다. 게임스탑 주가는 이날 주당 347.51달러에 장을 마감해 지난 8일 17.69달러 대비 12거래일 만에 19배 가량 뛰었다.
올해초 기준 125억달러(약 13조 8000억원)를 운용하던 헤지펀드 멜빈캐피털매니지먼트는 게임스탑 공매도 투자로 지난 22일까지 잃은 손해가 약 30%에 달했다. 35억달러로 올해부터 투자를 시작한 뉴욕 헤지펀드 메이플에인캐피탈도 약 30%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회사는 게임스탑 포지션이 손실의 주요 원인이라면서, 최근 2주 동안 손실을 줄이기 위해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섰다고 전했다.
기업 펀더멘탈 평가·분석 등과 같은 전통적인 전략조차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거품 논란은 여전하지만, ‘개미’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던 한 판 승부였다고 WSJ은 설명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레딧과 디스코드,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 플랫폼에 모여들며 집단행동을 하고 있다. 누가 얼마만큼의 수익을 올렸는지 서로 공유하고 독려하는가 하면, 투자 광풍에 힘입어 새로운 투자자들까지 합류하며 세를 불려나가고 있다.
일부 SNS 투자 집단은 기관 투자자들의 손실을 더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집단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모두 60초 동안 1000주씩 매수하자”는 식이다. 이날도 레딧에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토론방을 중심으로 이같은 대규모 매수세가 게임스탑에 유입됐다.
이에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기관 투자자들이 SNS 세력들이 주가를 움직이기 위해 모의하고 있다고 항의하는 웃지 못할 풍경까지 연출됐다.
전문가들은 SNS 세력이 시장조작 등과 같은 사기행위를 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래드 베넷 전 금융규제당국 집행국장은 “시장 조작 혐의를 입증하려면 거래자들이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허위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를 퍼뜨렸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며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서로를 독려하며 광란의 도가니로 뛰어든 것이라면 위법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래딧의 월스트리트베츠 토론방 개설자도 “우리는 주식에 대해 조언, 홍보, 추천하기 위해 어떠한 조직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회원들이 자율적으로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WSJ은 개인 투자자들이 단순히 공매도 세력과의 대결 구도를 형성하기 위해 게임스탑 주식을 대거 매도했다는 해석을 경계했다. 신문은 “온라인 채팅방에서 이뤄진 무분별한 집단 행동의 결과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라며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해부터 전형적인 거품 형태를 보였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수익률만을 추구하는 투기성 개인 투자자금이 가격 상승을 떠받치고 있고, 이같은 매수세가 공매도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게임스탑 주식은 현재 ‘순수한 투기 단계(pure speculative phase)’로 진입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