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부칙조항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

야당 “부칙 2조서 통비법·특정금융정보법 개정 규정해”
영장없는 무제한 감청·FIU 금융정보 남용 가능성 우려
정보수집권에 조사·추적권까지 국정원에 주는 것도 문제
여당 “긍정적 효과는 무시한 채 부정적인 부분만 부풀려”
  • 등록 2016-02-24 오후 4:32:00

    수정 2016-02-24 오후 9:18:30

[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야당은 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고 있는 걸까. 필리버스터 토론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들은 테러방지법이 국가정보원의 권한 강화로 이어져 국민들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필리버스터를 주도한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국정원의 무차별적인 대국민 감시 통제권에 날개를 달아주려는 박근혜 정권의 폭주에 국회의장이 동조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면서 “우리는 테러방지법을 반대하지 않는다. 테러방지법에 담겨있는 국정원의 국민 인권침해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이 꼽고 있는 인권침해, 독소 조항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영장없이 무제한 감청이 가능해지고 국정원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정보를 남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수정안’은 부칙에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정금융정보법)’과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을 개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국정원, 지금도 반국가단체 등에 대해 대통령 승인 얻어 감청 가능 = 특정금융정보법은 자금세탁행위와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테러 및 대량살상무기확산을 위한 자금조달행위)를 규제하는 데 필요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이용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법률로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금융위원회 소속으로 FIU를 두고 있다. 현재 이 법에 따라 금융회사 등은 금융거래와 관련해 불법재산이라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거나 금융거래의 상대방이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해 불법적인 금융거래를 하는 등 자금세탁행위나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면 지체없이 그 사실을 FIU에 보고해야 한다.

또 2000만원 이상의 현금거래도 무조건 FIU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FIU원장은 이렇게 수집, 분석한 정보를 자금세탁행위나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와 관련된 형사사건의 수사나 조세탈루혐의 확인을 위한 조사업무 등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금융위원회에게 제공할 수 있다. 테러방지법 부칙 2조는 이 특정금융정보법 7조1항에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조사업무와 국가정보원장을 추가하도록 했다. 국정원장도 FIU원장으로부터 영장청구 없이 금융정보를 받아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부칙은 통비법 7조 개정을 규정하고 있다. 통비법 7조는 국정원장 등 정보수사기관장이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에 한해 정보수집을 위해 통신제한조치(감청)를 할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중 통신의 일방 또는 쌍방당사자가 내국인인 때에는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대한민국에 적대하는 국가, 반국가활동 혐의가 있는 외국기관과 단체,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아니하는 한반도의 집단이나 외국 소재 그 산하단체 구성원의 통신일 때에는 영장없이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다. 즉 북한과 북한 연계 반국가단체에 대해 서면으로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4개월 범위 안에서 감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부칙은 통비법 7조1항에 대테러활동에 필요한 경우를 추가하도록 했다.

◇테러위험인물에 UN 지정 테러단체 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포함 가능 = 문제는 테러위험인물의 관리뿐만 아니라 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위험물질 등 테러수단의 안전관리, 인원 시설 장비의 보호, 국제행사의 안전확보, 테러위협에의 대응 및 무력진압 등 대테러활동을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남용하면 내국인에 대해 영장없이 무제한으로 감청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욱이 테러방지법은 ‘테러위험인물을 UN이 지정한 테러단체의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자금 모금·기부, 기타 테러예비·음모·선전·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로 정의해 정부여당이 얘기하는 것처럼 테러단체 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테러위험인물로 분류할 수 있다.

김기준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무제한 감청이 가능하도록 한 통비법 개정과 영장없이 금융정보를 취득할 수 있게 한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을 규정한 부칙은 삭제하거나 수정해야 한다”며 “이 독소 조항만 개선되면 야당도 테러방지법 처리에 협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에 정보수집권에다 조사권·추적권까지 부여, 통제장치 미흡 지적 =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정보수집이 가능하도록 한 9조도 대표적인 독소 조항이다. 9조는 국정원장이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를 개인정보처리자와 위치정보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고 대테러활동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대테러조사 및 대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추적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지방자치단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통신사업자, 금융기관 등에게 개인의 인적정보와 질병정보, 통화내역, 신용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테러위험인물을 미행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정원이 정보수집권외에 조사권과 추적권까지 갖게 되는 것으로, 남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들 기관들이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직도 권위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국정원의 요청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야당은 국정원에 모든 권한을 몰아주면 국무총리 소속으로 설치되는 대테러센터가 형해화될 수 있다며 조사권과 추적권은 센터에 부여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국회 통제장치가 미흡한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했다. 테러방지법 7조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으로 참여하는 국가테러대책위원회에 대테러 인권보호관 1명을 둬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야당은 여야간 협상과정에서 나온 여야 합의 추천 문구가 명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국회 견제장치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아예 국회가 추천한 상설감독관이 대테러센터에 나가 감독하고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에 대해 일정 기간마다 국회 정보위원회가 보고받도록 하는 규정을 반드시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언주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추적조사권 등을 국정원장이 아닌 대테러센터로 이관하고 국회 등의 사후적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우리당은 독소조항 배제를 위한 협상을 여러 차례 요청한 바 있으나, 새누리당은 계속해서 묵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테러방지법이 통과돼도 야당이 우려하는 인권침해 등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필리버스터 중단과 테러방지법 처리를 촉구했다. 이장우 대변인은 이날 현안 브리핑을 통해 “테러방지법도 통과시키지 않고 테러를 방지하라는 것은 첨단 장비를 옆에 두고 지뢰밭에 들어가 맨손으로 지뢰를 찾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법안의 긍정적인 효과는 깡그리 무시한 채 부정적인 부분만 상상하고 부풀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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