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청년·노인 한자리에'…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전방위 확산 왜?

세대 정치성향 불문 현 정권에 깊은 실망과 좌절
국가 신뢰 넘어 민주사회 일원 자긍심마저 무너져
"국정농단 사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무너져 분노"
  • 등록 2016-10-31 오후 4:53:39

    수정 2016-10-31 오후 5:49:11

시민들이 31일 오후 서울역에서 국정 농단 의혹을 받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피의자로 검찰에 출석하는 모습을 방송 뉴스로 시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비선 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날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대학가에서 시작된 시국선언에는 교수사회와 문화계뿐만 아니라 언론단체도 속속 동참하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인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3만 여명(경찰 추산 1만 2000명)이 참가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한 이 자리에는 진보·보수가 따로 없었고 10대 청소년부터 60~70대 어르신들까지 세대와 계층을 아우른 시민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현 정부 불신의 차원을 넘어 대의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신뢰까지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깃발’ 대신 ‘촛불’로…주체로 나선 시민들

특정 사상이나 단체에 얽매이지 않은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주체적으로 나선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깃발’로 대변되던 집회 문화가 웹사이트의 발달로 현재의 촛불집회 문화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변환의 시작점은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고(故) 신효순·심미선(당시 14세)양 추모 집회였다. 5000여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서울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두 여중생을 숨지게 한 미군이 무죄 판결을 받은 데 분노한 시민들은 무기력한 정부를 비난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여론이 들끓던 2008년은 시민 주도 집회 문화가 본격화 한 때다. ‘광우병 파동’으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안티MB카페’가 생겨났고 카페 회원들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기획했다. 첫날에만 약 1만 5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고 수천 명의 시민들이 100일 동안 광화문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정부의 부재를 질타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세대·정치 성향 불문…민주주의 신뢰 송두리째 흔들려

‘최순실 게이트’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는 성격이 또 다르다는 분석이다.

2030청년들은 잃어버린 희망에 분노해서, 민주화 세대는 피로 일군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장년층은 배신감 탓에 거리로 나섰다는 얘기다. 보수와 진보 등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이전과 구별되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지난 주말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목소리에서도 묻어났다. 촛불집회에 처음 나왔다는 자영업자 윤모(61)씨는 “그간 집회는 운동권들이나 나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왔다”며 “대통령의 결정을 나름의 정치 철학으로 여기며 존중해왔는데 ‘비선 실세’라는 개인이 내린 독단적 결정이었다는 사실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대학생 성모(24·여)씨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노력과 열정이 있다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는 말들은 원래도 믿지는 않았다”면서도 “최순실씨 딸의 입학·학점 특혜의혹 관련 소식을 접하면서 ‘애초 희망은 없는 게 아닌가’하는 좌절감에 휩싸였다”고 분개했다.

전문가들은 ‘민주사회의 일원’이란 자긍심이 무너지면서 시민들이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광우병 사태와 세월호 참사 등을 겪으며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지 오래”라며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과정을 통해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자긍심을 유지해 왔는데 이번 국정농단 사태는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까지 송두리째 흔들려버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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