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기다림 짧은 만남'…한일 정상회담 과제는

박근혜정부 들어 첫 한일 정상회담…식사 없이 간소한 만남
위안부 문제 중심으로 日 집단자위권 등 민감한 현안 논의 전망
만나는 것에 의미 vs 만난 것에만 의미
  • 등록 2015-10-29 오후 5:35:55

    수정 2015-10-29 오후 5:35:55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다음달 2일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번 한일 정상의 만남은 장고(長考) 끝에 성사된 만큼, 결과도 중요하지만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의제를 다룰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양국 정상이 만나는 건 박근혜 정부들어 처음이다. 한일 정상회담은 2012년 5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의 회담 이후 현 정부가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 정상회담은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열리지 않았다.

특히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는 올해를 한일 관계의 전환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대감이 사실상 좌절되고 있는 중에 성사된 회담인 만큼 양국은 물론 미국과 중국 등 국제사회의 눈도 양 정상의 입에 쏠려 있다.

3년 반만의 만남…과거사·북핵·남중국해 등 산적한 현안

일단 양 정상간에 논의할 의제는 쌓여있다. ‘뜨거운 감자’인 일본 군위안부 문제를 필두로 최근 개정된 일본 안보 법제와 국내 안보의 연계 문제, 북핵 비핵화를 위한 공조와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 등이 논의 선상에 오르고 있다.

김성철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강조해 온 위안부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중심으로 집단적 자위권에 의해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있을 것”이라며 “국민적 관심사이고 중요한 문제인 만큼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각자 자국의 입장을 강조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아베 총리는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 문제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김 연구실장은 “일본 경제가 상당히 어렵고 한국 경제 역시 침체돼 있는 상황인 만큼 한일간 호혜적인 경제협력 추진에 대한 공감대를 도출하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제언을 하기도 했다.

오찬도 없는 짧은 회동…‘면피용’ 아니냐는 지적도

그러나 산적한 현안들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거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는 힘들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단 형식에서부터 그렇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이 한중일 정상회담 다음달인 2일 오전에 진행될 것이고 오찬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아베 총리의 한국 방문이 한중일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방문(working visit)’이기 때문에 오찬도 기자회견도 없을 것이라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이미 회담 성과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간소한 형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리커창(李克?) 중국 총리가 공식 초청을 받아 이뤄지는 한중 정상회담은 한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이달 31일 열리며, 정상회담 후 만찬 물론 국무총리와 국회의장과의 회담도 예정돼 있다.

한일 정상회담 날짜를 공식 발표하기에 앞서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우리 정부가 11월2일 정상회담 개최를 일측에 제의했다는 보도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던 것도 양국 정부의 미묘한 신경전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동안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적극적이었던 일본 정부가 한발 물러난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회담의 시기나 형식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제스처로 볼 수있다는 것이다.

이성환 계명대 일본학과 교수는 “사소한 것 처럼 보이지만 오찬 일정이 없다고 미리 못을 박는 것은 회담 성과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내 여론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한 ‘면피용’ 회담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양 정상 ‘만났다’는 것에 의미 둘 수 있나

이처럼 시작 전부터 마찰음이 터져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한일 정상이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 또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봉영식 선임연구위원은 “한일 정상회담은 만남 자체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면서 “대화가 단절됐을 때는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변화였다면 대화가 시작된 후에는 다시 대화를 거부하고 대화에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변화가 되는 것이다. (한일 양국이) 대화 기조로 들어선 것 자체가 일종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김성철 실장은 “구체적인 의제에 있어서 각국의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미중 관계나 남중국해 문제 등 안보적으로 충돌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큰 틀에서 한일 혹은 한중일이 협력해 간다는 공동의 입장을 도출하는 것도 충분한 성과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이성환 교수 역시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만나지 않는 것보다는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히 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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