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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중국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은 화웨이의 비밀병기다. 화웨이는 지난 2004년 스마트폰에 쓸 자체 반도체 칩과 부품 등을 스스로 개발하기 위해 하이실리콘을 설립했다. 퀄컴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적 목표로 만들어진 회사다. 화웨이는 지난 15년 간 하이실리콘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었고 하이실리콘은 중국 최대 반도체 회사로 성장했다.
2일(현지시간)은 월스트리트저널은 하이실리콘이 미국의 블랙리스트 제재로 장기 실적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이실리콘은 스마트폰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칩셋부터 5세대(5G) 네트워크 기지국 등까지 화웨이가 쓰는 모든 제품을 만든다. 하이실리콤이 생산한 반도체와 부품은 거의 전량이 화웨이에 납품한다. 하이실리콘은 지난해 79억달러(약 9조4000억원) 매출을 올렸다. 전년보다 38% 증가한 수치다.
화웨이가 지난해 내놓은 스마트폰 ‘P20프로’에 들어간 부품 중에서 하이실리콘 부품은 27%를 차지했다. 미국 기업들이 생산한 부품은 7%에 불과했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이 ZTE(중싱통신)와는 달리 미국의 제재에 자신감을 드러낸 배경에는 하이실리콘이 놓여 있다.
하지만 하이실리콘 역시 칩을 생산·개발하는데 있어 미국 기업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적했다.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 기업인 영국 ARM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한 게 결정타다. ARM은 반도체 칩 설계의 가장 뼈대가되는 지적재산권(IP)을 쥔 회사다. 반도체 회사들은 ARM의 기술을 피해가기 어렵다.
미국 기업인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과 시놉시스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도 하이실리콘에게는 부담이다.
크레디리요네(CLSA)의 세바스찬 후 애널리스트는 “하이실리콘은 수많은 소프트웨어와 지식재산권을 미국 기업들의 라이선스를 구입해 쓰고 있다”면서 “1년 내에 미국의 제재가 해제되지 않을 경우 큰 위험을 맞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히타치의 칩 디자이너 출신인 슘페이 카와사키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신규 칩 개발이 약 3년 가량 지연될 수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중국 제품 수출이 제한될 경우 반도체 칩 국제 표준에서도 제외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지난달 26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스마트폰과 5G 분야에서 자체 칩 공급을 늘려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에게 의지한다. 우리는 미국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긴 싸움이 될 것”이라며 “화웨이는 이미 대비돼 있고, 이 과정을 통해 더 강해질 것이다. 미국은 우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와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반면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 유니클라우드의 왕 차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5G 장비에 필요한 7나노미터 칩 생산과 관련, 앞으로 1년 반 동안 미국을 따라잡을 수는 있겠지만 그때쯤이면 미국은 5나노미터 칩을 보유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뒤처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중국 재정부는 지난달 22일 집적회로 설계 및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기업들을 대상으로 올해 안에 이익을 내는 경우 2년 간 소득세를 면제하고 3∼5년째엔 법정 세율 25%를 절반으로 줄여주겠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