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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갑작스런 협상장 이탈과 일방적인 협상 결렬 선언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뿐더러 동맹국간 이뤄지는 협상으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 정부 역시 이례적으로 협상이 진행중인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먼저 나서서 언급했다. 또한 한·미 양국 협상대표는 회의가 파행된 후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각자의 입장을 전달하며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지난 19일 외교부는 협상이 결렬된 배경으로 미측이 새로운 항목 신설 등을 통해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증액해야한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정부는 기존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틀 내에서 상호 수용 가능한 범위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이미 미측에서 결렬을 예정하고 협상장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미 대사관측에서는 방위비 협상이 시작되자마자 몇몇 언론사에게 대사관 행사 관련 취재 요청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미측 협상대표였던 제임스 드하트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의 기자회견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이날 우리측 협상팀들도 미국내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감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방위비 협상이 적대국이 아닌 동맹국간의 협상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유리한 협상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보기에는 다소 과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미측이 제안한 ‘새로운 항목 신설’은 지난 10차 때도 주요하게 논의됐던 사안이다. 그 당시에도 우리 협상팀은 기존 SMA 틀 내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고 10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결국 합의사안에서 제외됐다. 협상을 결렬시킬 정도의 새로운 논란거리는 아닌 셈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미측 대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만큼 노력했는데 한국이 전혀 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어쨌거나 본국의 지침이 없이 움직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미국의 강경된 입장은 일찍부터 예견됐다. 최근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7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관저로 초청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50억달러를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를 20번 가량 들은 것 같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해리스 대사에 대해 무례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사실상 미측이 ‘외교적 결례’를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