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빨리 실사를 통해 정확한 손실 규모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처방을 내려 지금의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대우조선의 손실이 2~3조원대로 추정되면서 부채비율(자기자본 대비 부채)이 600% 이상으로 껑충 뛸 것으로 예상되자 신규 수주를 받는 데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이 400%를 넘어 유동성 위기에 처했던 점을 감안하면 자금 수혈 없이는 사업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단 위기감이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실사에 돌입하면서 정확한 손실 규모가 추정될 경우 시장의 관심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대우조선에 자본금이 투입될 것인지로 모아진다. 산은이 대우조선에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늘리는 것은 물론 선수금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 등 대출도 함께 늘리는 방안이 유력하다.
산은, 대우조선 유상증자..제3자 배정 유력
시장에선 산은이 대우조선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늘려주되 제3자 배정방식으로 자본금을 댈 가능성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제3자 배정방식으로 갈 경우 대우조선에 대한 산은의 지분율(31.46%)이 껑충 뛸 것으로 예측된다. 산은의 현재 지분율을 유지하면서 기존 주주들이 유증을 분산해 떠안는 방안도 있지만, 2대 주주인 금융위원회(12.15%)등 다른 주주들의 유증 참여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금융당국은 실사가 이제 막 시작된 단계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자금 지원 방식을 논하긴 어렵단 입장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산은이 유증에 나서도록 유도할 계획”이라면서도 “제3자 배정으로 할지, 기존 주주 배정방식으로 갈지에 대해선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장은 산은이 1~2조원 가량을 대우조선에 수혈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래야 부채비율을 현 수준인 300%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자 배정방식이 채택돼 산은이 출자한 자본금이 급증하더라도 산은법상 한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산은법에 따르면 산은이 출자한 모든 지분 합계액 한도는 기본자본금과 이익잉여금 등을 합한 금액의 두 배로 정하고 있는데 이 경우 총 한도액이 44~45조에 달한다. 한도액에서 수 조원 이상 여유가 있다는 게 산은의 설명이다. 심지어 금융위 승인만 받으면 한도를 넘은 출자도 가능하다.
2~3개월간의 실사가 끝나고 유상증자 방침이 내려지더라도 그 전까지 수 조원대 손실이 노출된 대우조선은 유동성 위기에 놓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RG다. RG는 조선사가 선주로부터 선수금을 받고 선박을 건조하다가 납기 안에 배를 인도하지 못할 때 선수금을 돌려준다는 보증서다. 다만 조선사가 선수금을 받으려면 은행, 보험 등 금융사의 보증이 필요하다. 조선사가 파산할 경우 이를 대신해 금융사가 선수금을 물어주겠단 보증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산은, 수출입은행 등 여타 채권단이 떠안을 방침이다. 산은은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동시에 2조4000억원이 여신을 갖고 있고, 수출입은행은 8조3000억원의 여신을 제공해 최대 채권기관이다.
올 하반기까진 대우조선의 회사채 상환에도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채권단에 물려있는 여신은 만기 연장을 할 수 있지만, 회사채를 갚지 못할 경우엔 즉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게 된다. 대우조선은 오는 23일과 11월 29일, 총 5000억원의 회사채를 상환해야 하는데 현재 약 6000억원의 유동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관계자는 “대우조선에 대한 금융권 여신의 대부분이 보증 형태로 구성돼있다”며 “대우조선이 정상적으로 선박 인도만 하면 돈을 떼일 우려가 없다”고 설명했다.
“국책은행 대주주 역할 한계”
이번 기회를 계기로 국책은행에 대한 감독당국의 감시망에 더 촘촘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공공기관인 국책은행이 대주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은은 대우조선의 수 조원대 부실을 지난 달말에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산은은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3조원대 손실을 냈을 때 대우조선에 경영상황을 확인했지만 괜찮다는 답변을 얻었기 때문에 산은 역시 뒤통수를 맞았단 설명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우조선은 공공기관이 주인으로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부 직원들이 사실상 주인 역할을 하면서 조선업 불황 등 경기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