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 먹잇감 된 韓기업.. 경영권 방어대책 세워야

복수의결권 미국·유럽선 이미 허용.. 한국은 방어수단 없어
경영권 지키기에 투자의욕 상실.. '포이즌 필' 도입도 시급
  • 등록 2015-07-08 오후 7:00:00

    수정 2015-07-08 오후 7:00:00

[이데일리 이진철 기자] 지난 5월26일 삼성그룹이 삼성물산(000830)제일모직(028260)의 합병을 전격 발표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양사의 미래 시너지 청사진에 대한 기대로 걸림돌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열흘쯤 뒤인 6월4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드가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확보하며 3대 주주로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시장에서는 합병을 반대한다고 여론전에 들어간 헤지펀드가 ‘엘리엇’이라는 이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경제위기를 겪던 아르헨티나의 채권을 헐값에 매입한 후 소송 끝에 군함까지 압류하며 이자까지 받아내는 끈질김으로 유명세를 탄 국제 ‘알박기펀드’로 악명 높은 바로 그 ‘엘리엇’이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엘리엇 외에도 또다른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캐피털이 최근 삼성물산 지분 2.2%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영국계 헤지펀드인 헤르메스가 삼성정밀화학 지분 5.02%를 매입하면서 삼성그룹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의 집단 공격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삼성은 지난 2004년에도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가 삼성물산 지분 5%를 매입한 뒤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 처분 등을 요구하면서 심각한 갈등을 겪은 바 있다. 헤르메스는 당시 분쟁으로 주가가 오르자 38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겨 떠났다.

이처럼 한국의 우량 기업들이 주기적으로 외국 투기자본의 먹잇감 표적이 되는 것은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가운데 자본시장은 적대적 인수합병(M&A) 허용 등 완전 개방돼 있는 반면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봉쇄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실상 ‘자사주 매입’ 밖에 없다. 반면 미국, 유럽 등 다른나라들은 투기자본의 공격에 대항하고 경영권 안정을 꾀할 수 있는 복수의결권이나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을 허용하고 있다.

구글의 경우 상장할 때 투기자본의 경영간섭을 받지 않고, 장기적인 경영전략 수립을 위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했다. 애플·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부분 기업들도 황금주(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 법안을 가진 델라웨어주에 설립등기를 하고 있다.

유럽도 1주 1의결권을 적용하는 기업은 평균 65% 정도로 3분의 1 가량이 복수의결권을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이 안정되지 못하면 경영권을 지키는데 비용을 많이 투입할 수밖에 없어 기업이 투자의욕을 잃게 된다”면서 “포이즌 필과 복수의결권 도입으로 투기자본의 공격에 대항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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